[정성희 칼럼]무엇이 GM과 도요타를 갈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1952년 런던 스모그가 발생했을 때 3주 동안 호흡장애와 질식으로 4000명, 이후 만성폐질환으로 8000명 등 1만2000명이 사망했다. 지금 중국과 비슷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원인은 석탄이었다. 그로부터 영국은 석유와 천연가스로 연료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결된 것은 대기오염뿐이 아니었다. 산업체질도 바뀌었다. 로스앤젤레스(LA) 스모그도 악명 높기론 런던 못지않다. LA 스모그의 원인은 자동차 배출가스의 질소산화물이다. 질소산화물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빛과 반응해 광화학 스모그를 일으켰다. 캘리포니아가 1966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만든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금은 질소산화물을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배출가스를 정화해주는 촉매장치 때문이다. 벌집모양(honey comb) 촉매장치의 발명가는 프랑스 사람 외젠 후드리다. 그러나 이를 실용화해 자동차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도요타 닛산과 같은 일본 회사들이었다. 때마침 캘리포니아를 필두로 연방정부가 대기오염 규제를 강화하자 일본 회사들은 순식간에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신기술을 적극 수용한 회사만이 시장이 열렸을 때 큰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대기오염에 대해선 엄격했던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1967년 대기오염 규제를 위해 캘리포니아 대기보전국(CARB)을 만든 건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 그러나 대통령 레이건은 각종 규제를 푸는 데 앞장섰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유럽 회사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연비 강화에 매달릴 때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회사들은 안정된 유가와 정부 정책만 믿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개발에 투자하고 디자인 경쟁에 골몰했다. 2000년대 들어 유가가 폭등하자 소비자는 SUV를 외면했고 이는 2009년 GM이 치욕스러운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만든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량에는 부담금을, 적게 배출하는 차량에는 보조금을 주는 저탄소차 협력금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무엇이 미국 차와 일본 유럽 차의 운명을 갈랐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지 않다든가, 자동차 생산국가 가운데 프랑스만 운영하는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엉터리란 얘기가 아니다. 문제가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일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해답이 나올 수 있다.

과시용 소비 때문인지, 마케팅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중·대형차 비율이 72%나 된다. 대다수 국가가 30%인 것에 비할 때 분명히 잘못된 구조다. 경제부처도 이걸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세계 4위 에너지수입국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의 16%가 교통 수송 부문에서 나온다. 어떻게든 중·대형차 중심의 소비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저탄소 협력금제 도입은 온실가스 감축도 감축이지만 그보단 왜곡된 우리나라 자동차 비율을 바로잡는 일이다.

주변에 물어보면 “소형차를 타고 싶어도 마땅한 국산차가 없고 외제차는 비싸다”고 한다. 수입 소형차가 잘 팔린다는 사실 자체가 소형차에 대한 일정한 수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다행스럽게도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소형차에 대한 충분한 기술력이 있다. 다만 중·대형차에서 얻는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수입 차만 유리하다는 국내 회사들의 주장이 투정으로 들리는 이유다. 5년의 준비기간에 허송세월하다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제도를 무산시키려는 국내 회사들이 혹여 과거 GM의 길을 걷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석유#천연가스#스모그#대기오염#온실가스#저탄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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