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사랑의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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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프리앙, 그림자, 1891년
에밀 프리앙, 그림자, 1891년
프랑스 화가 에밀 프리앙의 그림에 마음이 끌렸던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자칫 통속적이고 판에 박힌 사랑이란 주제를 치밀한 구도, 뛰어난 묘사능력과 결합해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것. 두 남녀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도구로 그림자를 활용한 점이다.

의자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두 손을 붙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도 여자는 그의 눈길을 피하고 있다. 두 남녀는 어떤 관계일까. 몇 가지 상황설정을 해보자.

사랑이 식어버린 여자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깊이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연인들. 혹은 짝사랑하는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거나 여자가 남자의 유혹을 뿌리치는 순간을 그린 것인지도.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벽에 비친 두 남녀의 그림자 효과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자아, 영혼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기법을 실험하곤 했는데 프리앙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에서 포레스티에 부인은 뒤루아의 구애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사랑에 빠진 남자는 바보가 되죠. 그냥 바보가 아니라 위험한 사람이 돼요.(…) 난 남자들한테 사랑이 참을 수 없는 욕정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내게 사랑은 일종의 영혼의 교감 같은 거죠. 남자들이 믿는 종교에는 없는 거랍니다.’

그림자 덕분에 이 그림과 모파상의 소설을 연결 짓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더 큰 기쁨은 그림자를 빌려 감정을 전달하는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에밀 프리앙#사랑#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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