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껍데기는 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지난달 14일 개봉한 영화 ‘인간 중독’. 15일까지 관객 143만 명이 들었다. 비교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지만 평단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평단의 반응과 달리 기자는 이 영화에서 건질 게 있었다. 그래서 두 번 봤다. 1960년대 군인 관사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그려낸 미술 솜씨가 좋았다. 영상미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시사하는 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는 삶에 착근하지 못하고 세상 속에 부유하는, 나를 찾지 못하는 껍데기들의 세상을 그린다.

남자 주인공인 대령 김진평(송승헌)은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베트남전쟁에서 공을 세운 엘리트 군인이다. 군인이 크게 대접을 받던 시절, 하지만 이런 지위와 주변의 평가는 김진평에게 점점 공허하게 다가온다. 그의 아내는 삼성 장군의 딸인 이숙진(조여정). 남편을 출세시키려는 욕망으로 사는 여자다. 김진평은 ‘내 딸의 남편’이 세상에서 힘주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장인의 꼭두각시이기도 하다.

이숙진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그는 남편과 정략결혼을 했다. 남편을 출세시켜야만 이숙진도 군인 부인들 사이에서 대접을 받는다. 그는 잠자리에서 가짜 오르가슴으로 남편을 격려하는 전략적인 여자다.

김진평이 사랑하는 여자는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 화교인 종가흔은 군인 아내들 사이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아웃사이더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잃은 종가흔은 자기를 키워준 시어머니의 부탁 때문에 남편 경우진(온주완)과 결혼한다. 남편은 어릴 적 종가흔을 성추행했던 인물. 종가흔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여자다.

이들은 모두 연극을 하며 살아간다. 김진평은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환각에 시달리지만 장군 진급을 앞두고 용감한 군인, 착실한 남편으로 살아야 한다. 첫사랑 종가흔은 그동안 껍데기로 살아온 김진평을 각성시키는 존재다. 강한 척, 고상한 척 살아온 그에게 ‘척의 가면’을 벗을 탈출구인 셈이다.

영화를 보고 캐나다 출신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1922∼1983)의 ‘연극 이론’이 떠올랐다. 고프먼은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마치 연극을 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를 이론화한 학자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진 자기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기로부터의 소외를 연구했다.

영화를 본 뒤 감상은 세월호 사고에까지 이르렀다. 세월호 선장은 왜 도망쳤을까? 그가 자부심이 생명인 진정한 선장이었다면 그랬을까? 내 배, 내 승객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없는 껍데기 선장으로 살아온 것이다. 생명의 위협이 닥치자 본질은 껍데기 앞에 무릎을 꿇는다. 건강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할 기업인으로 살지 못한 유병언, 공공의 안녕을 위해 원칙을 지켰어야 할 비리 관료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를 논하고 있는 요즘. 해법은 우리가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하도록, 혹은 않도록 만드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인간 중독#송승헌#조여정#연극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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