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문화재도 종합병원에 보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8일 03시 00분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환자가 1년에 3만 명씩 계속 발생하는데, 제대로 치료받는 환자는 4000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환자가 무려 300만 명이 넘는다. 치료는커녕 진료라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료받기 위해 기다리는 기간이 평균 5년 이상이기 때문이다. 의료인력 부족과 비싼 치료비 때문에 중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응급처치도 받지 못한 채 어두운 지하병실에 방치되어 망각과 사멸의 사선(死線)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이야기다. 매년 새로 출토되는 유물이 3만 점을 넘지만 제대로 된 복원치료를 받는 것은 13%에 그친다. 보존 대상 400만 점 가운데 보존처리된 것은 0.3%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환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국토 개발로 출토되는 유물이 증가하는 데다 환경오염으로 유물이 훼손되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늘어난 흰개미가 목조 유물을 갉아먹고, 짙어진 산성비가 금속 유물에 녹을 피우고 있다.

낳은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데, 신생아는 자꾸자꾸 태어난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지면서 관리해야 할 대상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가 20세기 초인 일제강점기의 유물도 문화재로 지정하기 시작하면서 중점관리 대상 문화재가 크게 증가했다. 매장문화재를 발굴하는 전문기관은 137곳인데, 보존처리하는 전문기관은 42곳에 불과하다. 보존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 개발보다 문화재 보호에 목소리를 더 키우면서, 정작 어렵사리 발굴한 문화재의 보존에는 왜 다들 침묵하는 걸까? 발굴조사의 성과는 대대적으로 평가하면서 치료복원의 의무는 왜 방치하는 걸까? 숭례문 화재와 복원 과정에서도 문화재 보호와 복원 과정의 고질적인 치부에 대한 대책만 나왔을 뿐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의 안전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졌듯이,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의 안전(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지만 문화재 보존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건 없다. 숭례문 화재 이후 오히려 문화재청은 119 구조본부처럼 바빠졌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응급처치에 급급할 뿐 환자를 제대로 돌보거나 치료할 겨를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문화재 관리와 연구개발이라는 두 음지가 겹치는 곳에서 보존과학은 항상 뒷방 마님이다.

문화재를 위한 종합병원이 필요하다. 몇백 년 만에 햇볕을 쬔 유물이 영상의학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종합검진을 받은 뒤, 목조 석조 금속 지류 직물 등 재료에 따라 내과 외과 피부과에서 복원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복원치료 과정에서 얻은 임상 자료를 토대로 보존과학과 복원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6·25전쟁에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군의 유해를 관리하는 데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면서, 정작 우리 조상들의 인골(人骨)을 수습하고 연구하는 데는 인색한 게 현실이다. 문화재 보호라는 막연하고 부담스러운 의무감에서 벗어나 보존과학의 힘을 빌려 조상의 생활사를 들여다보며 우리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오래된 인골도 조상들의 유전적 특징, 식생활, 영양상태, 생태 경제, 질병 같은 인류사를 발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보존과학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고유한 목적 외에 첨단 기술과 재료를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으며, 문화적인 가치 외에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미래산업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창조경제의 틀에서 문화재 보존과학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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