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5>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1905∼2004)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날 때,
원을 그리다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개 속에도 내가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포근한 별들 중에도 내가 있어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죽은 게 아니랍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붙은 이들도 다시, 그러나 조금은 따뜻하게 울게 되리라. 번역가 김미진의 블로그 ‘모눈종이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 ‘죽은 이가 산 이를 위로하는 위대한 안식의 시’라고 소개된 시를 옮겼다.

1932년 미국 볼티모어에 살던 시인이 이웃집 유대인 소녀가 어머니 무덤이 독일에 있어 찾아가 보지 못하는 걸 슬퍼하자 위로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의 아메리카 인디언 전승시도 있어 시인을 원작자로 인정하지 않는 설도 있다고. 아무튼 이 시는 1990년대에 시인이 자기를 알리기 전까지 지은이가 밝혀지지 않은 채 널리 퍼졌었다고 한다. 1977년, 영화감독 하워드 호크스 장례식에서 존 웨인이 이 시를 낭독했고, 1989년에 IRA(아일랜드공화국군)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영국군 병사가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시에 세계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곡가 김효근의 ‘내 영혼 바람 되어’가 알려져 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으로 자주 듣게 되는 임형주의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만든 곡이다.

전쟁은 인간이 처하는 대표적인 극한상황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모습과 가장 저열한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 한편 인간이 얼마나 이타적일 수 있는가. 삼가 6·25전쟁으로 희생된 분들의 안식을 빈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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