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에는 특별한 점이 여럿 있다. 우선 담배를 든 이가 남자가 아니다. 키스 자세도 낯설다. 여성이 다가가는 형국이다. 한 발을 들고 애교를 떠는 이도 여자가 아니다. 패션과 스타일도 21세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클래식한 느낌이 1930년대를 연상시킨다. 뒤편 분수대도 마찬가지다. 구식에 촌스럽다.
그렇지만 시점을 80년 전으로 옮기면 어떨까. 평가는 반대다. 첨단에 환상적이다. 세 줄 직선의 기하학적 패턴 장식, 네온의 화려함을 차용한 조명 연출, 그 빛으로 구조물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려는 시도, 물줄기를 광선으로 표현한 테크놀로지…. 혹시 ‘아르데코(Art Deco)’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바로 이런 게 아르데코 스타일이다.
엽서(사진)는 2005년 뉴질랜드 북섬, 거기서도 동쪽 해변에 있는 아르데코의 도시, 네이피어에서 보낸 것이다. 아르데코란 20세기 초반 서양에서 유행했던 예술사조. 17세기 바로크나 18세기 로코코처럼, 20세기의 문이 열리며 새천년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생각과 표현의 흐름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하학적 패턴과 빛, 자동차 비행기에 내재한 속도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찬사 등등. 지난 천년과는 다른 삶에 대한 희망과 동경이 그 요체다. 그리고 그건 전통적인 여성상에도 반영됐다. 여성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여권 신장’이란 새로운 흐름인데, 이 엽서가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아르데코 양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는 건축이다. 그리고 그 양식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미국의 뉴욕과 시카고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칭송받는 이 도시의 수많은 고층건물 대부분이 20세기 전반의 아르데코 양식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거미인간이 거미줄을 쏘면서 종횡무진 공중을 누비는 빌딩을 떠올려 보자. 상당수가 아르데코 양식이다. 그런데 엽서 속의 도시 네이피어는 주민이라고 해야 고작 5만 명 정도인 자그마한 항구도시다. 그런 곳이 어떻게 시대사조의 첨단이던 아르데코 건물의 대표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지진 때문이다. 1931년 2월 3일 오전 10시 46분, 규모 7.8의 강력한 지진이 네이피어를 강타했다. 진앙은 네이피어 북쪽 15km. 2분 30초나 계속된 첫 지진에 도시는 일찌감치 뭉개졌다. 여진도 강력했다. 12시간 동안 150회, 14일간 525회나 계속됐다. 네이피어에서 162명 등 모두 258명이 숨졌다. 폐허 속에 남은 것이라곤 당시로선 첨단이었던 콘크리트로 건물 몇 채뿐. 옛 건물은 모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형변화. 해안석호(潟湖·모래톱에 갇혀 호수가 된 바다)의 바닥이 4m나 상승한 것이다. 그 새 언덕으로 도시는 예전의 네이피어가 아니었다.
건축은 세 가지를 필요로 한다. 건축가, 건축주, 그리고 땅. 집이 사라지는 바람에 땅과 건축주는 넘쳐났다. 남은 건 건축가. 그런데 당시 유행사조는 아르데코였다. 지진 후 2년간 집중적으로 들어선 건축이 아르데코 양식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노르웨이 서해안의 아르데코 도시 올레순도 비슷하다. 1904년 화재로 도시가 전소하자 유럽 전역에서 건축가가 몰려들었다. 이 도시를 뒤덮은 아르데코 양식은 건축 러시의 산물이다. 시기적으로 좀 이르긴 하지만 시카고 다운타운의 상징인 스카이스크레이퍼(마천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1871년 대화재로 온 도시가 불타고, 세기 초 시카고가 금융 중심으로 부상하며 건축 붐이 일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아르데코의 기수였던 것이다.
네이피어 주변은 기후가 기막히다. 오죽하면 ‘뉴질랜드 지중해’라고 불릴까. 이곳이 와인산지가 된 건 그 덕분. 기즈번 말버러와 더불어 3대 와인산지로 손꼽히는 호크스베이의 중심타운이 바로 여기 네이피어다. 이곳 와이너리 30개 중엔 이 나라 최초의 와이너리(1836년)인 미션 에스테이트도 있다. 2월 3일 지진 기념일 전후(남반구여서 이곳은 여름)엔 와인축제도 열리니 와인 애호가라면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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