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관찰하고 의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늘 앞장서고 행동하는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관찰하는 아이가 말했다. “오래 오래 살아서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어.” 앞장서는 아이가 말했다. “보기만 하는 걸론 모자라, 세계는 스스로 바꿔야지.” 세월이 흘렀다. 두 아이는 어느덧 머리가 희끗한 어른이 되었다. 앞장서던 아이는 정치가가 되었다. 관찰하던 아이는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말했다. “보기만 하는 걸론 모자라, 세계는 스스로 바꿔야지. 당신의 그 말은 내 인생에 큰 쐐기처럼 박혔습니다.” 정치가가 말했다. “하하, 그런 일도 있었던가요.” 잠시 후, 교수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만화책을 보다, 그 페이지에 한참을 멈춰 있었다. 이런 얘기 또한 떠올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이 탄 기차 안에서 한 젊은이가 소리쳤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아가느냐고. 그러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된 거라고. 나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는 스스로 바꿔야지.”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도리어 이런 무력감에 빠져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자꾸만 실망스러워, 자괴감이 들어, 외면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말, 외면하는 어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참 슬픈 세상에 살고 있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지만 아직도 나는,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만화 속 교수의 말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관찰하고 의문하는 아이였던 교수는, 어른이 되어도 관찰과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교수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찾아 온 정치가. 그는 결국,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어쩌면 그는 이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싶어 교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아도, 실은 누군가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아도, 실은 누군가 계속 의문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정치가의 선택을 용기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관찰하고 의문하는 것.
우리는 매일,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 하루를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앞장서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관찰하고 의문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리고 관찰하고 의문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말이 더 내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앞장서고 행동할 수 없다고, 외면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내 마음 힘겹다고, 관찰하고 의문하는 것마저 멈추지 않기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아직도 나는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나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정말로 나는, 바라고 있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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