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공주는 마법을 이용해 간단하게 변신을 한다. 현실의 여성들도 그러고 싶다. 변신에 대한 ‘동화적 갈망’을 피트니스센터의 몇몇 주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날씬이’가 된 회원에게 캐묻는다. 어떻게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짰는지. 그런데 들으면서도 정작 궁금한 건 그런 경험담이 아니다.
‘뾰족한 게 있을 거야.’ 당사자가 털어놓지 않으면, 담당 트레이너를 쫓아가 탐색전을 벌인다. 그 여자한테 따로 무엇을 해주었는지, 어떤 마법으로 변신시켰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묘약, 이른바 피트니스센터 도핑이다. 운동선수들이 비밀리에 쓴다는 약 혹은 최신 다이어트 식품 같은 것들. 묘약으로 간주할 만한 힌트를 찾아내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날씬이 회원은 묘약의 힘을 빌렸을 뿐이니까 대단할 것도, 자신과 다를 바도 없다. 그래야만 자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홀가분해질 수 있다. 여성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냅은 저서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에서 “자기 몸에 대해 부정적인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세 배나 많은데 이는 문화가 여성들의 외모, 특히 ‘날씬함’에 가혹할 정도로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이런 상황에서 묘약은 여성들의 동화적 갈망을 ‘나도 간단하게 변신할 수 있다’는 강력한 로망으로 재탄생시킨다. 이 같은 로망은 매일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다이어트 약과 비법의 수요 기반을 형성해준다. 현실의 여성들은 강력한 마법의 힘을 빌리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금 또는 신용카드로 말이다. 따라서 날씬이로 변신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은 오로지 경제력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사실, 마법이란 없다. 대다수 여성은 꾸준한 운동과 식단조절 같은 관리만이 바른 길임을 안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이 거듭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핑계 뒤로 숨고 싶은 마음에, 마법에 기대보려고 한다. 그래서 핑계는 남편을 향한다. 좋다는 마법을 시도해볼 만큼의 돈도 못 벌어오면서 ‘지금도 괜찮다’는 위로마저 해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남편. 물론 ‘괜찮다’는 위로의 약발도 잠깐일 뿐이다. 여성에겐 변신 자체가 로망이므로.
그들의 변신에는 애초부터 종착역이 없다. 모든 변신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유행하는 패션부터 자기 연출법, 다이어트 마법에 이르기까지. 그렇기에 남들이 아직 모르는 뾰족한 마법에 그처럼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다. 나중에는 엉터리임이 드러날지라도,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변신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그들 나름의 ‘존재의 증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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