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탈중국 러시’ 변화로 본 중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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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1869년 완공돼 올해 145년을 맞은 미국의 첫 대륙횡단철도 건설 구간 중 서부구간에 동원된 노동자의 85%가량은 빈곤과 기아를 피해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인 노동자인 ‘쿠리(苦力)’들이었다. 미 노동부는 5월 9일 워싱턴에서 당시 근로자 1만2000여 명의 공헌을 기리는 융숭한 행사를 열었다. 낮은 임금을 받던 쿠리들은 당시 ‘철도 침목 하나에 목숨 한 개’라는 말처럼 위험한 작업조건에서 일하면서 수천 명이 숨졌다. 쿠리는 이후에도 최하층 노동자의 대명사로 불리며 사회적으로도 천대를 받았다.

쿠리 이후 중국인의 ‘탈(脫)중국 러시’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최근 “1차 대전 중 산둥(山東) 성의 빈곤 농민 8만 명을 포함해 14만 명가량이 유럽으로 건너가 직·간접적인 ‘전쟁 노역’에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1949년 ‘신(新)중국’이 들어선 뒤에는 본토 중국인들이 영국령이었던 홍콩으로 줄줄이 이주했다. 1974년 11월 이후부터는 불법 월경자 송환조치가 이어졌지만 수십만 명의 중국 주민이 철조망을 넘거나 바다를 헤엄쳐 홍콩으로 향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이 1980년대 초 광둥(廣東) 성 제2서기 등으로 근무하면서 개혁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폐쇄되고 낙후한 중국 본토에서 ‘개방돼 번영하는 홍콩’으로 탈출하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최근에도 중국인의 탈중국 러시는 계속된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최근 부호들의 순위를 발표하는 후룬리포트를 인용해 개인 재산 최소 4200만 위안 이상의 ‘슈퍼 부호’ 1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가 외국 여권을 갖고 싶다고 대답해 이민 의사를 나타냈다. 6일 발표된 ‘2014 중국 투자이민 백서’에 따르면 투자이민의 51%는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답했다. 캐나다(21%), 호주(9%), 유럽(7%) 등의 순이었다. 이주 동기로는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2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환경오염(20%), 식품 안전(19%) 순이었고 낮은 사회복지(15%), 의료수준(11%), 자산안전(8%), 출생 제한 및 출생 복지(4%) 등이 뒤를 이었다.

쿠리 이후 약 150년, 중국인들은 ‘빵’을 위해 망망대해를 건너갔던 미국에 당당히 투자자로서 미국 땅을 열고 있다. 미국의 첫 고속철인 캘리포니아 주 고속철도는 중국 기업과 엔지니어들이 미국 근로자를 동원해 건설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위상과 세월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중국인 해외 관광객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 1억1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중국 국가여유국(여행국)은 최근 추산했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 일그러진 중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탈중국 러시도 있다. 최근 광둥 성은 가족을 외국에 머물게 하는 관료인 ‘뤄관(裸官)’ 866명에게 직위 강등 등의 조치를 내렸다. 가족과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뒤 언제든 ‘맨몸’처럼 가볍게 해외로 도피할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뤄관이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다면 뤄관의 가족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앞으로는 모든 직급의 뤄관에게 불이익을 줄 계획이다. 최근에는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더 큰 자유를 찾아 떠나는 부유층의 이야기가 종종 소개된다.

‘쿠리’에서 ‘뤄관’으로의 변화는 세계 2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이 반(反)부패와 자유의 확대 같은 더 크고 어려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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