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내 가족의 심장이 멈춘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안전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소방관 설명을 들으며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있다. 동아일보DB
안전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소방관 설명을 들으며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갑자기 심장이 멎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안전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은 ‘국민 필생기(必生技·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가 되어야 한다.

○ 너무 짧은 골든타임

필자는 지난 칼럼(6월 3일자)에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골든타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평소에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고 하더라도 막상 환자를 맞닥뜨리는 상황 자체가 공포이기 때문에 침착한 대처가 힘들다. 그래서 항상 두 가지 상상을 준비해 두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쳐온다면?” “내 가족의 심장이 정지된다면?“

자, 머릿속에 이런 상상을 해보자.

침대에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한다→불러도 대답이 없다→몸을 흔들어보고 볼을 꼬집어보아도 반응이 없다→호흡을 느낄 수도 없고 가슴에 귀를 대봐도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다. 이때야말로 평소 대비해 온 심폐소생술을 시작할 때이다.

아버지를 침대에서 끌어내려 딱딱한 방바닥에 누이고 흉골 아래 정확한 위치를 양손을 포개어 힘껏 누르기 시작한다→1초에 1, 2번씩 가슴을 누른다→큰소리로 가족들을 불러 모으고 119에 신고하라고 하면서 제세동기(전기 충격기)를 지참해 달라고 말한다→구급대가 8분 이내(국내 구급차 평균도착시간)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짬짬이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왔는지, 호흡이 느껴지는지 관찰한다→구급대가 도착하면 전문 응급구조사가 심폐소생술 및 기도 확보와 가슴에 전극을 붙이고 제세동기 스위치를 켜고 전기 충격을 가한다→아버지를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한다→의료진의 노력으로 아버지는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며칠 후 의식도 완전히 돌아온다→아버지는 급성 심근 경색증으로 진단이 되고 막힌 혈관을 시술로 넓힌다→며칠 후 아버지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니트로글리세린(관상동맥확장제) 두 알을 열쇠고리에 달고 다닌다→우리 가정엔 다시 행복이 찾아오고 가족 모두가 만나는 사람마다 성공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떠들기 시작한다.

차근차근 상상해보면 어느 한 가지도 일반인이 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훈련하고 준비하면 익숙해질 수도 있다.

이렇듯 응급 상황 대처의 타이밍을 살리고 용기가 준비되었더라도 소생술법 자체를 모르면 소용이 없다. 해답은 교육이다. 심폐소생술을 전 국민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쳐 ‘국민 필생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 해답은 교육 또 교육뿐

①국가가 인증한 동일한 매뉴얼이 제작되어 가정에까지 비치되고 통신매체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이미 대한심폐소생술협회가 표준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최신 경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뿐 아니라 연구회를 통해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심폐소생술협회와 국가(보건복지부?, 국가재난안전처?)가 인증하는 단일화된 지침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

②심폐소생술은 자가 학습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교육 전문 인력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 역시 BLS(Basic Life Support·기본 생명 보조), ACLS(Advanced Cardiovascular Life Support·고급 심폐 생명 보조) 과정 등 의료진을 중심으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잘 마련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일반인 중에서도 강사가 많이 배출되면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현존 교육 시스템을 이용하여 전문가 육성과 양산만 하면 된다.

③교육 장소가 필요하다. 병원의 경우 이미 평가에 전 직원 심폐소생술 과정 이수 항목이 포함되어 있고 훌륭한 교육시설도 준비되어 있다. 관공서, 기업, 군대, 학교 등에서도 교육장을 준비하고 교육을 시작한 곳이 많다. 다만 필요성의 인식과 훈련 의지가 부족하여 교육이 건성건성 이루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④장비가 필요하다. 심폐소생술 훈련용 인형과 제세동기가 핵심 장비이다. ANY(time)라는 이름의 인형이 대표적인 훈련용 인형인데 이 인형의 보급이 필요하다. 보급 노력의 일환으로 심폐소생술협회의 ‘교육용 인형 후원하기 운동’은 칭찬받을 만하다. 지하철역이나 큰 건물에 들어가면 “하트(♡)와 번개(?) 표시가 겹쳐져 있는 제세동기를 흔히 볼 수 있다. 대개 쓸 줄 모르고 막상 쓰려고 하면 겁부터 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쉽다. 가슴에 전극을 붙이고 스위치를 켜고 충격단추만 누르면 끝이다.

⑤교육 대상이 전 국민이 되어야 한다. 크게는 의료 관련 기관, 관공서, 기업체, 군대, 학교 등으로, 작게는 반상회, 경로당 등등.

또 전 국민이 용기와 적극성을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환경과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몇 가지만 예로 든다.

○ 공영방송 통한 홍보도 필요

①항상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에서 아예 고정 시간대에 재난안전방송 코너를 신설하고 대처요령과 정보를 항시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프로그램은 물론, 심폐소생술의 성공 및 실패 경험 등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심폐소생술이 성공해 환자가 살아서 일상에 복귀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스토리가 수시로 알려진다면 국민의 관심을 끌어내는 좋은 동기 부여책이 될 수 있다.

②조기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의사놀이하듯이 교육한다면 때가 되면 무슨 놀이였는지, 왜 했는지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③개별 교육기관을 연계하는 통합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국가재난안전처(?)의 한 부속품으로 기능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④교육시설과 장비투자가 국가 예산으로 할애되어도 건강보험 재정 활용 면에서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⑤응급상황 대처 못지않게 심장 정지 빈도 자체가 줄도록 심장 건강관리 캠페인도 필요하다. 운동, 식이요법, 조기 발견 등 미리 미리 챙기는 것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평소에 철저히 준비하고 자신감과 소명감으로 소중한 가족의 생명을 살린다는 자세로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심폐소생을 시도하여 생명 부활의 주체로서의 보람과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면 심폐소생술도 감동이 있는 생명 존중의 실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국민적인 관심 및 지혜와 함께하는 담론과 실천이 절실한 때이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응급상황#심폐소생술#교육#홍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