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전해 준 한 축구인의 말이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 전에 만난 그 축구인은 한국이 16강 진출을 자신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월드컵에서 골도 넣었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8강이요?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언론이 끄집어낸 얘기죠. 그래도 이런 분위기에서 8강이 어렵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하겠어요.”
그의 말이 맞았다. 한국은 알제리에 2-4로 완패했고 세 경기에서 1무 2패를 기록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냉정히 보면 16강도 어려운 목표였다. 6월 5일 발표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57위다. 본선 32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랭킹이 낮은 국가는 호주(62위)가 유일했다. 물론 FIFA 랭킹이 월드컵 성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각 나라 축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랭킹 톱10 가운데 1위 스페인, 4위 포르투갈, 9위 이탈리아, 10위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이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페인을 무너뜨린 칠레와 네덜란드만 해도 랭킹 14, 15위의 ‘우등생’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5-1로 완승해 이변이었지, 승리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연패로 체면을 구긴 스페인은 호주를 3-0으로 완파했다. 칠레·네덜란드와 달리 스페인과 호주 사이에는 넘기 힘든 벽이 존재했다. 한국의 수준도 호주쯤 되지 않을까. 한국보다 랭킹이 한 계단 높은 카메룬도 호주처럼 전패했다. FIFA 랭킹 30위 밖이면서 16강에 오른 국가는 나이지리아(44위)뿐이다.
8강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16강 좌절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공항에서 호박엿 세례를 받은 홍명보 감독은 본인 입으로 8강을 얘기한 적이 없다. 대표팀을 맡은 이후 줄곧 “1차 목표는 조별리그 통과”라고 했을 뿐이다. 그 정도 목표는 본선에 진출한 모든 감독의 희망이자 립 서비스다. 하지만 “사상 첫 원정 8강 달성”을 외치며 국민의 눈높이를 끌어올린 일부 언론은 이제 “4-2-3-1 전술만 고집하다 참사를 불렀다”며 대표팀을 책망하고 있다. 같은 전술로 16강에 올랐으면 대단한 뚝심과 믿음이라며 ‘홍비어천가’를 불렀을 것이다.
대표팀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잦은 감독 교체부터 선수 선발까지 곳곳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벨기에(랭킹 11위), 러시아(19위), 알제리(22위)를 상대로 ‘이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뿐, 죄인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4년 뒤 월드컵은 다시 열린다. ‘한국 축구의 젖줄’이면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K리그는 이번 주말 재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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