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11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WEF)에서는 뉴스룸(편집국 또는 보도국)의 새로운 경향 10가지가 소개됐다. 그중 세 번째는 트위터나 블로그,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유포되고 있는 부정확한 정보들을 검증하는 것이 신문의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보도했을 때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 보도를 노리고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여론 조작’도 종종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중차대한 과제가 됐다.
사례 소개에서는 독자와 쌍방향으로 협력하는 공개검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신문사도 있었다. 토론자들은 여러 가지 검증의 가이드라인을 쏟아냈다. 예를 들면 취재원 검증 차원에서 정보를 생산한 소셜미디어 계정 운영자가 어떤 팔로어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알아보라, 소셜미디어 운영자와 직접 접촉해 해당 정보와 관련된 또 다른 추가 정보를 확인해 보라, 위치 날짜 사진의 메타데이터(데이터 관리에 필요한 작성자, 저장 장소 등의 데이터)를 확인하라 등이다.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이겠지만, 허위 정보와 의도적인 역정보가 판치는 상황에서 고도의 전문적인 검증 능력을 갖추는 것은 언론의 신뢰를 지키고 소셜미디어의 정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적 과제가 돼 있는 셈이다.
엄격한 검증 문화와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도 언론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전문적인 검증 기술은 한국 언론에서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잇따른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불러온 언론의 인사 검증 역사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동아일보의 ‘조각(組閣) 검증’이 출발점이다.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앞다퉈 인사 검증에 나섰고, 공직사회의 부패 방지와 도덕성을 확립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21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언론의 인사 검증도 이제 보다 체계적이고 일관된 원칙 아래 진행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우선 검증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애꿎은 가족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은 피해야 한다.
낙마냐 통과냐를 가르는 잣대도 보다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20여 년의 인사 검증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부분들이 있다. 똑같은 위장전입도 자녀 교육 때문인 경우는 대체로 용납이 되는 분위기다. 일반인들도 많이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처럼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저지른 위장전입은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사익을 위해 편법을 쓴 전례가 있는 인사에게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주요 공직을 맡길 수는 없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제언하고 싶은 것은 청와대가 인사수석비서관실을 부활시킨다고 하니, 언론의 검증 능력을 십분 활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는 점이다. 언론의 인사 검증이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는 만큼 청와대도 이런 언론의 순기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법조계 안팎의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검찰총장후보 인사추천위원회 모델은 참고할 만하다. 여기에는 당연직인 법조계 인사뿐만 아니라 학계 인사와 언론인도 참여하고 있다. 자리의 성격에 따라선 이처럼 외부인사들까지 참여시키는 공개검증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김진태 검찰총장을 추천했던 지난해 10월 검찰총장후보 추천위원회는 모두 9명으로 구성됐는데 언론인 대표로는 다름 아닌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위촉돼 참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찰총수 추천의 칼자루를 쥐고 있던 분이 몇 달 후에 검증의 칼날에 스러졌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