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분명히 해둘 게 있다. 필자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현 부총리가 진작 경제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한다는 세간의 얘기에 동의하는 쪽이다.
필자는 2월 26일 본란에 실린 ‘현오석과 검투사’라는 글에서 현 부총리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검투사의 결기로 치열하게 일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을 이해시키고, 정치적 이해로 반대하는 야당과는 맞붙어 싸우고, 국민 설득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는 그러지 못했다. 칼럼이 나간 뒤 여러 명의 기재부 간부들로부터 “몇 번이나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부총리는 본성이 그런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도 답답하다”는 말을 들었다.
현 부총리는 작년 2월 취임 이후 3차례나 경질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8월 중산층에 대한 증세 방안이 담긴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저항에 부닥쳐 닷새 만에 내용을 수정했을 때가 첫 번째다. 구렁이 담 넘듯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세금을 올리려 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올 1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건 때 정보 유출의 책임을 금융소비자에게 돌리는 실언으로 국민적 공분도 샀다. 3월 그가 각 부처를 지휘해 만들고 언론에 브리핑까지 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초안이 대통령 손에서 대폭 수정됐을 때 경질론이 파다했다. 경질 위기를 넘길 때마다 내상은 깊어졌다. 현 부총리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 부총리가 이렇게 궁지에 몰려 퇴장하게 된 것이 오로지 그의 잘못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리다. 기재부가 세금을 어떻게 걷고, 예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국정이념이 녹아든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1월 말 카드 정보 유출 관련 실언을 한 현 부총리를 겨냥해 “이런 일이 재발하면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공개 경고했다. 이후 현 부총리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브리핑은 취소됐고 대통령은 직접 계획안을 가다듬어 담화문으로 발표했다. 그 결과 정부 경제팀의 수장은 ‘식물 부총리’가 됐다. 그런 부총리를 여당이 국정의 협상 파트너로 예우할 리 없다. 야당에는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손쉬운 타깃이 됐다.
공무원들, ‘눈치가 백단’이다. 실·국장 승진 인사도 맘대로 못하는 힘없는 수장에게 몸 바쳐 일할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안팎에서 흔들리는 부총리 말을 다른 부처는 듣겠는가. 권한과 영역 다툼을 하는 부처들을 기재부가 조정하겠다고 나서도 영이 서질 않는다. 지난해 주택 취득세 영구 인하를 둘러싼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의 갈등,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도입을 놓고 대립하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지난달 서로 다른 자동차 연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산업부와 국토부…. 출범 1년 반도 안 된 박근혜 정부가 벌써 ‘레임덕’에 빠졌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3선 국회의원인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새 경제부총리로 내정되자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세 장관이 경제팀장으로 오면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행보도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 있는 장관이 와도 힘 빠지는 거 한순간이다. 대통령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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