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19>한은 총재가 저축은행 통장 안깨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홍명보 감독과 저축은행은 닮았다. 둘 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다가 한순간 신뢰를 잃으면서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홍 감독은 선수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고, 지도자로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실패한 감독이라는 비난이 옛 업적을 뒤덮었다. 저축은행은 2010년만 해도 정기예금에선 연 5%대, 후순위채(다른 부채를 모두 갚은 다음에 남는 돈으로 상환해주는 채권)에선 연 8%가 넘는 이자를 줬다. 창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2011년부터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계기로 손실을 본 피해자가 속출했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했고 분노했다. 재테크의 대명사라는 명성은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으로 대체됐다.

대다수 국민은 저축은행을 더이상 재테크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올해 3월 기준 저축은행에 예금이나 적금을 든 사람 수는 317만 명으로 2011년 3월(434만 명)보다 117만 명(27%)이나 감소했다. 예·적금액은 2011년 3월 73조 원에서 올 3월 32조 원으로 급감했다. 한 금융권에서 불과 3년 만에 수신 규모가 반 토막 이하로 줄어든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주변을 둘러봐도 저축은행에 신규로 예금이나 적금을 들었다는 말을 최근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저축은행의 시대는 끝인가? 단언은 이르다. 앞서 말한 현재 예·적금 가입자 수 317만 명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예·적금 가입자 가운데 만기 때까지 계약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라고는 해도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시점이 2011년 중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구조조정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의 정기예금이나 적금은 이미 만기 도래한 상태다. 따라서 저축은행 사태 이후에도 만기를 연장하거나 신규 가입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는 뜻이다. 저축은행의 위기가 닥쳤는데도 이 사람들은 왜 빠져나오지 않는 걸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저명인사들의 사례에는 이 수수께끼를 풀 힌트가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7개 저축은행에 2012년 기준으로 3억5530만 원을 분산 예치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총재 자신과 배우자 명의로 된 8개 통장에 평균 4441만 원씩 나눠 넣었다.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도 3억500만 원을 7개 저축은행에 약 4500만 원씩 맡겼다. 조 전 수석의 부인도 저축은행에 예치했다. 이는 모두 합법적인 투자여서 문제 될 것은 없다.

주목할 점은 한국 경제의 수장인 이들이 왜 못미더운 저축은행에 계속 눈길을 주고 있나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금융권 전문가들의 해석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고금리다. 저축은행 이자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2%가 안 되는 상황에서 최고 3%의 정기예금 이자를 보장해주는 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시중은행 중에 2% 후반의 정기예금 금리를 주는 곳이 있지만 저축은행이 확정이자를 좀 더 준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다. 더욱이 저축은행의 정기적금 이자율은 연 4%에 이른다. 펀드의 경우에는 수익률이 들쭉날쭉해 믿을 수 없다고 본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 위험하다고 하면 당장 창구를 찾아가 통장을 해지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법이 보장한 장치를 정확히 알면 공포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현 예금자보호법이 원리금 합계 5000만 원까지 보호하도록 돼 있으니 연 3.0% 이자를 주는 3년 만기 정기예금 기준으로 원금 예치액이 4600만 원 이하라면 원금과 이자를 떼일 염려가 없다. 매달 불입하는 정기적금이라면 연이율 4.0%인 상품 기준으로 월 납입액이 130만 원 이하이면 원리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원리금 5000만 원을 보장받으려면 예치액이 50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쪼개서 가입해야 한다. 이때 예·적금을 넣는 은행 자체를 다르게 해야 한다. 한 은행에서 2개의 계좌를 만들어 돈을 넣는 것은 분산 예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월급 중 일부를 떼어 꾸준히 적립하려는 직장인은 저축은행의 정기적금을 고려해볼 만하다. 서울에 있는 SBI저축은행의 정기적금 금리가 연 4.2%로 가장 높다. 충남 아산시의 아산저축은행과 충북 청주시의 청주저축은행도 연 4.0% 금리를 주는 정기적금을 판매 중이다. 본인이 직접 신분증과 1회분 납입금을 들고 지점을 방문하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1∼3년 단위로 가입하는 저축은행 정기예금은 연 3% 초반이 최고 금리다. 현재 연 3%대의 정기예금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은 서울의 친애, 전남·광주의 골든브릿지, 충북의 한성저축은행 등이다.

묘하게도 홍 감독과 저축은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조차 닮은꼴이다. 잘나갈 때는 좋은 점만 보고,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는 나쁜 점만 보려 한다. 이래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선을 분명히 긋자. 저축은행이 특판 예금을 팔거나 보험과 연계해 금리를 얹어주는 마케팅을 할 때를 노려 금융상품에 적극 가입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설령 다시 저축은행에 봄날이 온다 해도 저축은행이 파는 후순위채에는 눈길을 주지 말라.

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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