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다 사망한 지 오늘로 꼭 20년이 됐다. 북한은 하루 전인 어제 ‘북남관계 개선과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려는 원칙적 입장’이라는 제목의 공화국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북핵 등 현안에 대한 기존 입장을 정당화하면서 남한을 비방하는 것이어서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북한이 이 성명에서 “북과 남은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미국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인상이 짙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방한해 “북핵에 확고히 반대한다”고 밝히는 등 한중이 밀착하는 게 불편할 것이다. “우리의 핵은 통일의 장애도, 북남관계 개선의 걸림돌도 아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을 격렬히 비난하는 북의 태도는 현실인식에 아무 변화가 없음을 드러낸다.
북한이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늘어놓은 것은 경청할 필요가 없으나 “올해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보내겠다”는 제안은 거부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2002년 9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 젊은 여성들이 주축인 응원단을 파견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응원단원으로 인천을 다녀갔다. 이들의 ‘미모’와 김정일을 비이성적으로 떠받드는 행동거지가 화제가 됐다.
문제는 북의 의도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사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올해 8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 군사연습 계획을 취소할 것을 최근 요구했다. 북한이 이런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하려는 목적이라면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 붕괴론이 제기됐지만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까지 3대 세습정권이 이어지고 있다. 남한에 대해 무력 도발과 화해의 몸짓을 반복하는 것도 바뀐 게 없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시대를 다시 맞고 있다. 중국은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주변 정세의 격변기에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나라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갈 수 있다. 정부는 냉철한 자세로 북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미모의 응원단에만 혹했다간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