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많겠지만 요즘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대로 가져가면 직원은 우선 고객의 나이와 성별을 입력한다. 이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 ‘종로에서 캔커피를 사는 20대 여성은 스타킹도 같이 살 확률이 높다’는 식의 정보를 얻어 적절히 상품을 진열할 수 있다.
이런 ‘빅 데이터’ 분석 능력은 기업뿐 아니라 스포츠 세계에서도 승부를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일요일 새벽 벌어진 월드컵 축구 8강전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경기가 그랬다. 두 팀은 전후반과 연장전을 0 대 0으로 마친 후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연장 막판 교체돼 들어간 네덜란드의 후보 골키퍼 팀 크륄은 코스타리카의 슛 두 개를 막아냈다. 반대로 이번 대회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코스타리카의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는 네 골을 내리 허용하며 지고 말았다.
크륄이 원래부터 승부차기에 특별히 강한 선수는 아니다. 그는 소속 클럽에선 지금까지 20개의 페널티킥 가운데 단 2개만 막았다 한다(승부차기는 페널티킥과 같은 지점에서 찬다). 일요일 보여준 그의 선방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네덜란드 코칭스태프의 데이터 분석 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찰력 뛰어난 축구팬이라면 크륄이 막지 못한 세 번의 킥에서도 공의 방향만큼은 제대로 예측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보통 골키퍼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한쪽으로 미리 몸을 던지는 도박을 건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보고 반응해서는 늦기 때문이다. 이날 키커로 나선 다섯 명의 코스타리카 선수들은 각각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으로 공을 찼다. 이전 경기인 그리스와의 16강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하지만 크륄은 매번 정확한 방향으로 먼저 몸을 던졌다. 100%의 예측력이다. 반면 상대편 코스타리카의 나바스 골키퍼는 네 번의 킥 중 두 번의 방향만을 제대로 읽어 50%의 평범한 예측력을 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 크륄은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7주 동안 승부차기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유럽의 축구팀들은 2000년대부터 통계학자와 심리학자, 심지어 경제학자들까지 고용해 상대팀 선수의 페널티킥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승부차기에 들어가는 상대 선수의 과거 전력을 샅샅이 조사해 골키퍼에게 어떤 경우에 어느 방향으로 뛰라는 지침을 전달한다. 물론 상대방 골키퍼의 습관도 분석해 키커들에게 전달한다. 2006년 월드컵 당시 독일이 무려 1만3000회의 페널티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일화는 축구계에 잘 알려져 있다. 8년이 지난 지금 강팀들은 더욱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손에 넣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정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상대팀 분석은 둘째 치고 우리 팀 선수들의 컨디션조차 전술에 반영하지 않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직관을 믿어 보는 것도 좋지만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을 둔 과학적 경영 없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 요즘 추세다. 축구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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