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100년의 맛 간직한 ‘샐러드계 슈퍼스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4>시저 샐러드

사진 출처 심플리레시피닷컴
사진 출처 심플리레시피닷컴
정동현 셰프
정동현 셰프
시저 샐러드는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영어명)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것은 확실히 하자. 정확한 유래가 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저 카디니가 1924년 7월 4일 레스토랑에 손님들이 몰려들어 정신이 없을 때 주방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만든 것이 시저 샐러드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근 100년 전이지만 그날 시저가 만든 시저 샐러드는 요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차이라면 서양 멸치젓인 안초비 대신 우스터소스로 감칠맛을 낸 정도다. 레시피가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이올리 마요네즈나 올리브유, 로메인 상추, 닭가슴살, 베이컨, 크루통, 반숙 달걀은 들어가야 시저 샐러드구나 싶다. 그렇다고 샐러드 하나 만드는 데 경상도 남자처럼 고지식할 필요는 없다.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파르메산 치즈를 얇게 져며 올리거나, 메추리알을 써도 좋다. 재료만 보면 어려울 게 없다. 그러나 한국에는 맛있는 시저 샐러드가 참 드물다. 이건 ‘시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다.

샐러드가 나오지 않는 식당이 드물지만 따져보면 그게 그거다. 한식당에서는 마요네즈 ‘사라다’, 일식당에서는 토마토와 양상추 양파에 참깨 드레싱, 양식당에서는 발사믹 드레싱 샐러드가 공공연한 규칙이다. 한국처럼 다양한 채소를 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샐러드라는 이름이 붙으면 다들 너무 ‘쫀다’. 샐러드를 너무 어렵게 혹은 너무 쉽게 생각해서다. 오해는 ‘샐러드바’ 같은 샐러드 뷔페가 시작이었다. 샐러드로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여자친구한테 끌려간 위장 큰 남자들에게도, 다이어트는 생활이라는 여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장표 재료인 그런 것을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쫌’ 그렇다.

이름은 있어 보이지만 시저 샐러드도 그래 봤자 샐러드다. 만들기 간단하단 말이다. 드레싱은 아이올리, 마늘이 주인공인 마요네즈다. 마트에서 사서 써도 되지만 계란 노른자에 식초, 레몬즙, 소금, 마늘을 넣고 기름을 천천히 부어 가며 거품기로 팍팍 치면 거짓말 안 보태고 1분도 안 돼 완성되니 한 번쯤 시도해 봄 직하다. 드레싱만 직접 만들어도 요리의 격이 달라진다. 그래도 귀찮다면 시판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을 섞어주면 된다. 프로 흉내를 내려면 안초비를 갈아 넣자. 감칠맛이 팍 살아난다. 또 다른 주인공인 베이컨은 팬에 바삭하게, 닭가슴살은 껍질 쪽을 밑으로 뜨겁게 달군 팬에 지지듯 굽는다.

나머지는 너무 쉽다. 식빵은 기름에 튀겨 크루통으로, 달걀은 반숙으로, 물 건너온 로메인 상추는 어리고 부드러운 잎으로만 깨끗하게, 드레싱 팍팍, 베이컨 잔뜩, 닭가슴살 수북, 파르메산 치즈 소복,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면, 이탈리아 이름이지만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시저 샐러드의 화려한 탄생이다. 종잡기 힘든 조합의 재료는 이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해주는 것 같다(어쩌다 대충). 그럼에도 하나같이 감칠맛 도는 재료에 바삭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다채로운 식감을 보면 ‘참 잘 만든 요리’구나 싶다.

그래서 시저 샐러드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특히 늦잠을 자고 일어난 휴일의 점심, 무거운 식사는 부담스럽고 아무것이나 먹기는 싫을 때, 나는 홀린 듯 시저 샐러드를 시킨다. 무조건은 아니다. 공장표 마트표가 아니라 정직한 손으로 만든 것, 소여물처럼 풀만 가득 든 것이 아니라 재료의 식감과 맛이 조화를 이룬 것, 요리라고 부를 만한 시저 샐러드라야 오케이다.

이렇듯 시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시저 샐러드를 만든 그날 셰프 시저는 분명히 꽤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손님들이 몰아닥치고 난 후 와인 한잔하며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어때? 나 아직 안 죽었어!”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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