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대호]본질과 소명이 실종된 대한민국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정치, 정당, 국회가 국가의 조타실을 차지,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
승리 지상주의 매몰된 정당… 자리-직무 본질에 대한 질문 외면
기준-원칙 없는 공천 되풀이
정치본질 망각한 선거제도, 재보선후 즉시 개정 나서라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요즘 머리에 콱 박히는 광고가 하나 있다.

자동차의 본질은 run(달리고), turn(돌고), stop(서고), protect(보호)라는 광고다. 에어컨, 오디오, 외관, 소음진동, 승차감 등은 어떨지 몰라도 핵심 기능 하나는 좋은 차라는 얘기다. 광고는 부자, 성공, 이웃, 의리 같은 시대의 갈망과 결핍을 포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라서, 본질을 물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광고는 곁가지나 표피에 집착해온 사회 풍조의 반영일 것이다. 사실 이 광고가 내게 특별히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자동차 회사와 나의 인연이 각별한 탓도 있겠지만―대우자동차에 9년 근무하고, 자동차산업 관련 책도 한 권 썼다―결정적으로는 한국 정치판의 본질, 소명, 구조에 대한 물음 결핍 현상에 답답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7·30 재·보선 공천 파동도, ‘우리와 무관한 정치귀족들끼리의 대혈전’ 같은 선거전도 본질을 파묻은 우리 정치의 한 단면이다.

공천도 일종의 인사인 이상 기준과 원칙이 있다. 그것은 자리나 직무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다. 예컨대 정치와 국회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은 뭐하는 존재인지? 우리 시대의 도전은 무엇이고, 어떻게 응전할지? 자신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정치를 만드는 구조는 무엇인지? 그런데 7·30 재·보선뿐만 아니라 지난 지방선거와 대선, 총선 때도 이 중요한 물음은 실종 상태였다. 단지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와 “후보는 나로 하자”가 주제곡이었다.

7·30 재·보선은 국회의원 15명을 새로 선출하는 만큼 공천을 통해 정당(지도부)의 안목과 가치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무엇을 보여주었나? 국회의원의 주요 임무는 입법, 예·결산, 국정감사, 대정부 질의라고 알려져 있다. 핵심은 입법과 예·결산이다. 현실은 어떤가? 우리 국회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합쳐서 400조 원에 가까운 결산 심의를 허술하게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예산 관련 관심은 전체 예산에 비해 조족지혈이지만 생색내기 좋은 쪽지 예산에 집중된다. 입법은 정부부처가 만든 법안 통과 대행이 주다. 정부 부처는 의원 입법처럼 위장해야 절차가 간소하니까 실적에 목마른 의원과 그야말로 ‘윈윈’이다.

법안 처리 과정과 법안 품질은 따지기조차 민망하다. 만약 법안 품질이 좋았다면, 다시 말해 시행령을 잘 만들고, 핵심을 찌르는 감시 감독을 해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성토한 암과 원수 같은 규제의 상당 부분은 원천 봉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피아 문제도 지금보다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유신시대처럼 웬만한 법안은 일본 등 선진국에서 베껴 오고, 일은 청와대와 직업 관료가 다하고, 국회는 거수기 노릇만 해도 된다면 정치의 본질과 의원의 소명에 대해 캐묻지 않아도 된다. 공천도 지금처럼 해도 된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민주국가의 전철을 밟아, 정치와 정당과 국회가 국가의 조타실을 차지하여 국운을 좌우한다.

이제 더이상 규제나 정책도 베껴 올 곳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과제든, 주요 시스템과 정책이든, 국회의원 자리든 그 본질이나 소명을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정치경쟁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헌법과 선거법 등)도 고민해야 한다.

정치에서 본질과 구조에 대한 물음이 실종된 것은 당 수뇌부의 안목과 영혼의 문제도 없진 않지만 결정적인 것은 진짜 중요한 것들을 묻어 버리는, 양당의 정치 독과점과 적대적 상호의존을 초래하는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1940년대 진보(좌익)와 보수(우익)가 전쟁을 하여 성립된 분단 체제하에서 진보와 보수 양당·양강 구도는 실체나 진실과 상관없이 선-악, 애국-매국, 항일-친일, 좌익-우익의 사생결단의 대결 구도를 부른다. 정치는 총칼만 안 든 전쟁이다. 본질과 소명? 그 따위는 이기고 나서 고민할 일이다. 인간이 정신줄을 놓으면 미치거나 죽는다. 그런데 정치가 본질과 구조에 대한 물음을 놓아 버리면 나라가 망한다.

7·30 이후에는 목숨을 걸고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정치의 생산적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민족의 명운을 좌우하는 일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본질#공천#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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