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김무성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63·5선)은 일찌감치 “다음 당 대표는 내 차례”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황우여 전 대표와는 다른 당 대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니 박근혜 정부가 탄생한 ‘12말(末) 13초(初)’쯤 되지 않을까.

주변에 대고 “나이나 당 경력, 당에 대한 충성과 공헌도 등을 감안할 때 김무성 당 대표는 순리(順理)”란 말도 자주했다. 앞서 당 대표를 한 안상수 창원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황 의원이 모두 15대 국회 입문 동기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여의도 ‘96학번’이고 야당 대표급에는 정동영 정세균 김한길 의원 등이 있으니 “때가 됐다”는 말도 수긍은 간다.

1987년 통일민주당 당료로 정당정치에 발을 디딘 지 27년 만에 집권여당 당 대표의 뜻을 이뤘으니 대기만성이라 할 만하다. 4수(修) 끝에 원내대표가 됐고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차례나 소속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는 굴곡도 있었다. 하지만 김 신임 대표 정치역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모름지기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주 앉은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순탄하게 국회의원 하다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억지로’ 사무총장 맡아 친박 좌장이란 이름을 얻었고 결국 공천 못 받았지. 또 훌륭한 대통령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직언하다가 멀어졌잖아. 그런데 또 대선 때 어렵다고 해 일 충실히 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떠났어. 이제 또 대통령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쳐야 할 역사적 소명이 주어진 셈이야.”

열흘 전 나눈 이야긴데 마치 승리가 확정된 당 대표가 구상하는 당청(黨靑) 관계의 고뇌처럼 들린다.

미묘한 시기에 두 사람은 또다시 운명처럼 마주 서게 됐다. 이번에는 집권 2년 차의 ‘제왕적’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해야 하는 당 대표라는 숙명을 짊어졌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보스 기질 강한 부산 ‘싸나이’가 박 대통령과 풀어 나가야 할 운명 방정식 결과에 따라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에 지각 변동이 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두 사람의 관계는 ‘정치적 동지’가 되려는 김 의원의 노력이 정치적 주종(主從) 관계를 원하는 박 대통령의 힘에 번번이 굴복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사석에서 술이 오르면 “박근혜를 공주 모시듯 해선 안 된다”고 일갈(一喝)하곤 했던 김 대표지만 결국에는 김 대표 자신도 한때 ‘가시나’라 불렀던 박 대통령을 여왕 모시듯 한 것은 아닐까.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서청원 의원은 선거 기간 내내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장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에 빠질 것처럼 겁을 줬다. 두 사람이 만들어 온 애증(愛憎)의 드라마도 아직 그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김 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공언했다.

김무성이 당 대표가 되면 박 대통령과 갈등하고 당청 관계가 삐걱거릴 것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1만4400여 표 차라는 압승을 김 대표에게 안겼다. 김 대표가 농담 반 진담 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한 ‘무대(무성 대장)’ 리더십을 원한 것은 아닐까.

당권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는 대권욕이 없다”고 한다면 십중팔구 거짓말일 것이다. 김 대표도 마찬가지이리라. 다만 정당한 권력의지가 국민의 박수를 받으려면 정치의 복원에 기여하는 성공한 당 대표가 되는 것이 순서다.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심기 경호에나 신경 쓰는 무력한 집권여당 대표가 되려면 차라리 당 대표를 안 하는 게 낫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김무성#전당대회#새누리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