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슈미더는 독일의 유명 신문 쥐트도이체차이퉁 기자다. 새로운 뉴스거리를 만들어 내라는 데스크로부터의 시달림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비슷한가 보다. 어느 날 편집회의에서 그는 ‘거짓말하지 않고 40일간 살아보기’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천해 기사화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과는 짐작하는 대로다. 친구의 바람기를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고백해 친구에게 얻어터지고 포커에서 패를 보여줘 난장판을 만들었다. 거짓말하지 않고 살기의 어려움을 유쾌하게 보여준 이 기록이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기자가 거짓말을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거짓말 심리학 분야의 최고봉인 로버트 펠드먼 박사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평균적으로 10분에 세 번 거짓말을 한다. 실험 참가자 100여 명은 처음 만난 상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10분간 모두 거짓말을 했고 12번이나 거짓말한 사람도 있었다. 사실을 약간 비틀어 말한 거짓말, 자기방어를 위한 거짓말, 엉뚱하기 그지없는 거짓말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에서 펠드먼이 말하는 거짓말의 보편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거짓말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하는 존재인 만큼 사회는 법률로, 공동체 규약으로, 교육으로 거짓말을 못하도록 제도적 압력을 가한다. 국회나 법정에서의 위증 금지 조항도 그런 것이다. 특별히 공직후보자의 거짓말은 공직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핵심요소다. 국민과 공직자는 일종의 ‘주인-대리인 관계’인데 평소 거짓말하는 대리인은 일을 하며 주인을 속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정 후보자는 1987년 분양받은 조합아파트를 전매 금지 기간에 팔고도 팔지 않고 거주했다고 했다. 이는 작정하고 한 거짓말이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던 조합아파트는 상당수 기자들이 분양받아 거주하던 곳이었다. 초년병 시절 나도 그곳에 있던 선배 기자들의 집에 드나들었다. 조합아파트였기 때문에 앞집도 옆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기자들이 살았다. 전매 금지 기간에 아파트를 팔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한동네에 모여 살며 남의 집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던 동료 기자들에 대한 결례다.
정 후보자는 마침내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거짓말을 하게 됐다는 말이야말로 거짓말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다. 네다섯 살 아이도 아니고 성인이 자신이 어디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정말 기억을 못한다면 그런 부실한 기억력 또한 장관에겐 결격사유다.
인간은 거짓말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정 후보자와 다른 점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금세 드러날 거짓말을 할 만큼의 용기나 배짱은 없다는 것이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몰아치는 공세 앞에서 숨도 잘 못 쉬고 쩔쩔매는 데 비해 정 후보자는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을 할 때도 당당해 보였다. 기자 출신 앵커의 연기력이었을까. 위증 논란으로 청문회를 파행으로 몰아간 그가 휴회 도중에도 ‘폭탄주 회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그가 아직도 음주운전을 하며 경찰에게 큰소리치던 기자의 객기를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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