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17일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제로 추정되는 미사일에 격추돼 승객과 승무원 298명 전원이 생명을 잃었다. 용서할 수 없는 잔혹한 만행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여객기에는 189명의 네덜란드인을 비롯해 10여 개국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한국인 희생자는 없지만 1983년 구(舊)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젠장! 100% 민간 항공기다. 무기는 없고 수건이나 휴지 같은 민간인 물건들뿐이다.”(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 “어쩔 방법이 없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러시아 정보장교)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시한 친러 반군과 러시아 정보장교의 전화 통화 감청 내용이다. 미국 위성 자료와 종합해 보면 이번 공격은 반군의 소행으로 파악된다. 반군들이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 정보당국은 이미 공격에 사용된 무기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크렘린을 포함한 책임 있는 자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사설로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푸틴뿐”이라며 반군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가 내전에 빠져든 것도 구소련의 부활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크림 반도를 합병한 데서 비롯됐다. 말레이시아 여객기는 푸틴이 촉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의 죄 없는 희생자인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 지역 영공을 피해 운항하지만 공동운항협정에 따라 다른 항공기를 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민족주의와 분파주의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는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강 건너 불로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번 일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 종식 이후 최악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는 등 국제사회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어제 긴급회의를 열어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민간 항공기를 공격한 반(反)인륜적 범인들과 배후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인류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