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박 대통령, 게으른 지도자가 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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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대동(大同)은 요즘 말로 지도자의 소통을 의미한다. 옛 중국 주나라에서 나라에 결정하기 어려운 큰일이 있을 때 임금은 우선 자신에게 묻고, 다음 신하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에게 묻고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구한다고 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과 점괘가 일치하면 이를 대동이라고 했다.

언젠가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식사를 하면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어렵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최근에 나왔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박 대통령은 직접 수많은 보고서를 검토한다고 하니 자신에게는 많이 묻는 모양이다. 그러나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고, 여론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하늘의 뜻을 구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하(신하)에게 묻고 국민(백성)에게 묻는 것은 대동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지도자의 자세다.

만기친람의 박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만기친람이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비스마르크 총리와 함께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폰 몰트케 장군은 지도자를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똑똑하면서 게으른,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우둔하면서 게으른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몰트케가 최선으로 여긴 것은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가 아니라 똑똑하면서 게으른 지도자다. 몰트케가 최악으로 여긴 것은 우둔하면서 게으른 지도자가 아니라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몰트케는 장교의 유형으로 분류한 것이지만 황제의 간섭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도 있었다고 본다.

지도자의 만기친람이 권위주의와 연결되는 사례는 많다. 중국 청나라의 황제들은 근면성만큼은 역대 어느 왕조의 황제들도 쫓아갈 수 없었다. 특히 옹정제가 부지런했다. 엄청나게 많은 상주문을 일일이 읽고 의견을 다느라 잠도 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과로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황제란 모름지기 완전한 독재자가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에게 대드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고 ‘문자(文字)의 옥(獄)’으로 불리는 처절한 사상 탄압을 행했다.

만기친람 한다는 것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몰트케는 똑똑한 쪽이든 우둔한 쪽이든 상관없이 지도자로서는 부지런한 쪽보다는 게으른 쪽을 더 높이 평가했다. 박 대통령도 부지런하기보다 게으른 지도자가 돼 보라. ‘똑똑한’ 대통령이 보기에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수석이나 장관에게 맡겨 보라. 수석이나 장관이 반드시 옳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뽑은 수석이나 장관이라면 곧 옳은 결정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 사이에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자신이 항상 옳을 수는 없을뿐더러 대통령 눈에 옳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수석이나 장관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게으를 수 있다.

나라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는 새벽부터 한밤까지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설혹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신이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여기지만 남들 보기에는 우둔할 수 있다.

지도자가 게으르다는 것은 논다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이든 인사든 결정권을 다 움켜쥐고 있지 말고 수석이나 장관의 말을 듣고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라. 게으른 지도자가 대동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지도자#만기친람#수석#장관#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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