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사회의 도덕 수준은 원래 높지 않았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사회가 무너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가 발전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정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서로 잘 알고 품앗이를 통해 상호적 이타주의가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촌락 공동체에선 도덕의 유지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도시의 익명성은 그런 도덕을 쉽게 덮어버렸다. 경제 발전의 과실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이익 집단들의 발호는 도덕의 작동을 어렵게 하고 차츰 약화시켰다. 여기에 정부가 점점 비대해지면서, 부패는 점점 널리 퍼지고 깊어졌다. 원숙해진 우리 사회에 걸맞은 도덕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 도덕의 성공을 보여주는 ‘응징’
1970년대에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가상공간에서 컴퓨터 프로그램들로 협력 경기를 실험했다. 두 경기자들이 협력하면 둘 모두 작은 이익을 나누어 갖지만 한쪽이 배신하면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용어설명 ○1)’를 응용한 것이다.
궁극적 우승자는 ‘되갚기(TIT FOR TAT)’라는 가장 단순한 프로그램이었다.이 프로그램은 ‘일단 협력하고 그 뒤엔 상대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는 전략을 추구했다. ‘되갚기’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 일단 협력한다. 이후 상대가 협력하면, 계속 협력해서 협력의 이익을 나누지만 상대가 배신하면 협력을 거부해 더이상 피해를 보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배신을 일삼는 ‘똑똑한’ 프로그램들은 점차 외면을 받아 작은 이익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너그러운 프로그램들도 ‘똑똑한’ 프로그램들에 배신당해서 손해를 보았다.
‘되갚기’는 도덕적 전략이다. 먼저 배신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신을 응징한다. 협력은 협력으로 보답받고, 배신은 배신으로 보답받는다. 이것이 바로 상호적 이타주의의 핵심이다.
○ 법의 지배
이 원리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약속이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처음엔 큰 이익을 보지만, 결국 신용을 잃어 경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남에게 속임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기업도 거덜이 나서 사라진다. 이에 비해 ‘되갚기’ 프로그램처럼 모든 상대들과 협력하되 배신을 당하면 단호히 관계를 끊어 응징하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번창한다.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들과 기업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도덕 수준이 높아진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선 가장 중요한 약속인 법을 어긴 사람들에 대한 응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떼법’이라는 이기적 집단들의 범법 앞에 공권력은 무력하다. 취객에게 파출소 순경들이 공격받고, 사법부는 구조적으로 부패해서 ‘전관예우’가 관행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양심적 시민들도 법을 지킬 마음이 줄어든다.
허물어진 도덕을 세우려면 법을 어긴 사람들을 응징해야 한다. 적어도 법을 어기는 일이 이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길은 교통 법규부터 확실히 세우는 방안일 터이다. 지금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다. 외국인들이 “한국엔 횡단보도가 없다”고 하는 지경이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여도, 피해자 가족과 합의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고 한다.
교통 법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날마다 지켜야 하므로 그것이 무시되는 상황은 법의 권위를 심각하게 해친다. ‘깨진 유리창 이론’(용어설명 ②)은 이런 관찰을 떠받친다. 교통 법규 준수를 도덕 회복의 계기로 삼자고 대통령이 나서서 시민들을 설득하면 단숨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근자에 동아일보에서 ‘시동 꺼 반칙운전’이라는 기획을 통해 교통 법규 준수 캠페인을 벌였는데, 정부에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쉽다.
○ 市場의 도덕적 기능
법을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만으로는 도덕을 튼튼하게 하기 어렵다. 여기서 시장의 역할이 나온다. 시장에선 시민들이 협력을 통해 이익을 얻어서 나누고 배신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응징하므로 도덕적 개인과 기업이 늘어난다.
사회에서 필요한 결정들은 대부분 개인이 내리는 ‘개인적 선택’이다. 그런 선택들을 우리는 시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떤 결정은, 예컨대 입법, 치안, 국방, 구휼과 같은 것들은 사회 전체가 내리는 것이 낫다. 이런 ‘사회적 선택’을 하는 기구가 정부다.
문제는 정부가 커질수록 시민들이 이타적 상호주의를 발휘할 마당이 줄어 그 자체로 도덕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도덕 수준은 상업이 발달한 시민 사회들에서 으레 높았다.
시민들은 관리들에 대해선 무력하므로 큰 권한을 쥔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게 된다. 액턴 경의 지적대로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정을 누그러뜨리는 길은 정부의 몫을 줄이고 시장의 몫을 늘리는 것이다. 세금과 규제를 되도록 줄여서 정부의 몸집과 권한을 줄이면, 부정의 소지가 원천적으로 줄어든다. 정부가 커지면 부패가 늘어나고, 도덕 수준이 낮아진다. 시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도덕 수준을 높인다. 시장은 정부보다 효율적이므로, 시장이 커지고 정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 경제가 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경제 성장은 시민들의 물질적 풍요를 늘릴 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 개인들의 자유, 사회적 관용을 늘려서 사회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든다.
○ 시장의 불신
물질적 이익과 결부되는 시장이 시민들의 도덕심을 높인다는 얘기는 우리의 통념이나 직관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심의 핵심인 정의감이 애초에 재산과 관련되어 진화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덜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시장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시장이 문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부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가정에 돌아오면, 소비자들이고 그래서 시장의 일부다.
동양 사회는 전통적으로 “관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以吏爲師)”는 한비자의 주장을 따랐다. 시민들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선의와 지혜를 지닌 관리들이 백성들을 지도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관리들이 선의와 지혜를 갖추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한지 역사는 보여준다. 원숙한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누리는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조건반사적으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실은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지도 없이도 시장은 제대로 움직일까?
다음 글에선 시장에 대한 믿음의 근거들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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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죄수의 딜레마 두 범죄자가 협력해 범죄사실을 숨기면 형량이 함께 낮아질 텐데 둘 다 상대방 죄를 밝힘으로써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게 되는 현상. 게임 이론의 유명한 사례로 경제학 심리학 국제 정치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② 깨진 유리창 이론 낙서,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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