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한국판 모텔? 평양의 목욕탕과 식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옛날 어머님이 들려주셨던, 1960년대 말 북한에서 부모님이 연애하실 때 일이다.

하루는 두 분이 밤늦게까지 거닐다가 시내 중심 공원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두어 시간쯤 흘렀을까. 갑자기 벤치 밑에서 인기척이 나더란다.

깜짝 놀라 들여다보니 그 밑에서 안전원이 기어 나왔단다. 그는 멋쩍은지 “에이, 오늘 저녁은 시간 낭비했네” 하고 툴툴거리며 가더란다. 반동적이거나 퇴폐적인 이야기 또는 행위가 있나 숨을 참고 지켜보다 끝내 두 손을 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님 세대에는 연애조차도 꽤나 ‘혁명적’인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땐 그런 시대였다. 평양도 아닌 지방 도시에서조차 반동을 잡겠다고 벤치 밑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흘렀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북한의 감시 방법도 진화했다.

지난해 여름 평양에선 주체사상탑 현대화 공사가 진행됐다. 명색은 탑 위 봉화의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꾼다는 것. 이때 곳곳에 감시카메라(CCTV)도 함께 설치됐다. 그런데 평양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보도 쪽에 바늘구멍 같은 적외선 감시카메라들이 몰래 설치됐다는 사실을…. 주체탑 주변은 평양의 연인들이 밤에 가장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누군가 감시카메라를 통해 자신들을 지켜보며 낄낄거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깊은 밤 그 앞에서 진한 스킨십을 하는 연인들만 불쌍해졌다. 요즘은 평양의 처녀들이 몰라보게 과감해졌다고 한다. 여기에는 북한 지도층의 변화도 한몫했다. 김정은과 이설주가 공개석상에 팔짱을 끼고 나타나자 연인들이 환호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남녀가 팔을 끼고 다니면 비사회주의 행위라고 단속했는데, 이제는 단속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여름이 왔다. 평양에도 연인들의 계절이 찾아왔다.

그런데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놀러 갈 곳도,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으니 기껏 대동강이나 보통강에 나가 산보를 하고 식당에 가는 게 전부다. 다행히도 평양은 수도를 가로지르는 강 옆에 차도가 붙어 있지 않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도시이다. 그것만은 정말 좋은 점이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개선청년공원과 능라유원지가 새 단장을 하면서 이곳도 연인들의 인기 코스가 됐다. 이 공원과 유원지의 피크 타임은 저녁시간이다. 처녀들은 규찰대의 단속에 걸리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이 한껏 섹시하고 특색 있는 옷차림으로 나간다. 그러자 놀이기구를 타기 위한 목적보단 처녀들을 구경하기 위해 총각들이 몰려온다. 단 이곳은 커플이 가기엔 사람이 너무 많고, 조용히 속삭일 수 있는 장소가 못 된다는 것이 흠이다. 남녀의 사랑이 무르익는 데 강 옆이든 놀이공원이든 장소가 중요할까마는….

평양의 문제는 무르익은 다음이다. 손만 잡아도 서로 불이 활활 타는데 이 불을 끌 곳이 정말 마땅치 않다.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서 오세요” 재촉하듯 뻘건 간판을 번쩍거리는 모텔, 여관 따위가 북한에 있을 리가 없다.

첫 번째 선택지는 집이다. 부모들이 다 출근하는 경우라면 낮에 번개처럼 집에서 만나면 된다. 그런데 이것도 평양이니까 이모저모 여의치 않은 점이 많다. 우선 평양은 주택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한 집에 3대, 4대가 사는 집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낮이라고 해도 집이 비어 있기 쉽지 않다. 또 평양의 아파트엔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처음 몇 번은 따로따로 올라가며 찾아가는 집을 거짓으로 말하면 되지만 자주 가게 되면 들키기 십상이다. 제일 큰 문제는 낮엔 본인들도 조직 생활에 매이다 보니 서로 시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돈이 좀 있는 남녀라면 그나마 약간의 선택의 폭이 있다. 제일 많이 활용되는 것이 식당이다. 단골이 돼서 식당 책임자를 알게 되면 돈을 좀 찔러줄 경우 방 하나를 내준다. 평양에는 칸막이가 돼 있는 식당들이 적지 않다.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평양에선 좋은 음식 못지않게 찾기 어려운 것이 이런 조용한 공간이다. 그래도 몇 시간은 괜찮지만 하룻밤은 힘들다.

또 다른 대안은 목욕탕이다. 목욕탕 책임자에게 찔러주면 독탕을 몇 시간 내준다. 밤에 경비 서는 노인들에게 술과 안주, 약간의 돈을 찔러주면 하룻밤도 가능하다. 북한 당국은 식당과 목욕탕이 퇴폐의 온상이라며 주기적으로 단속하지만 이건 아무리 막아도 소용없다.

식당이나 목욕탕에 갈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을까. 있다. 그냥 산에 오르는 것이다. 모기에 뜯길 각오는 물론 해야 한다. 평양의 중심부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모란봉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 대성산이 있다. 모란봉엔 조용히 숨을 곳이 많다. 경치가 끝내주는 모란봉에 낮부터 올라가 불고기를 구워 놓고 어두워질 때까지 둘이 한잔하면 분위기가 끝내준다. 연인과 함께 어느 식당 가서 한잔할까 고민하는 한국의 오빠들도 이것만큼은 북한이 부럽다고 할지 모른다.

중요 국가기념일이나 정치 행사가 있는 휴일 밤이면 모란봉과 대성산에는 온통 전짓불이 번쩍거린다. 수색조가 산을 훑는 것이다. 그러면 덤불에 숨었던 연인들이 토끼처럼 뛰쳐나와 도망친다. 하지만 너무 열중하다 보면 민망하게 적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는 무조건 찔러주어야 한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단속원 주소를 따서 최대한 빨리 찾아가야 한다. 그나마 여름이니 산이라도 오르는 것이다. 바깥도 춥고 집 안도 춥고, 해마저 빨리 지는 겨울에는 지하철밖에 갈 곳이 없다.

김정은의 지시로 최근 평양엔 유원지와 수영장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놀이기구의 짜릿함도, 수영장의 찬물도 젊음을 식힐 순 없다. 아스팔트도 연인들도 뜨거워지는 아, 평양의 여름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김정은#스킨십#모텔#식당#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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