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차르 푸틴’의 인기와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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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평범한 러시아 은퇴자들도 풍족한 연금 덕분에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옛 소련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호사다. 국민에게 아낌없이 돈을 풀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내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은 지난주 푸틴의 지지율이 80%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벨 다닐린 정치분석센터 소장은 “지금껏 한 번도 푸틴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이 푸틴 편에 서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2주 전에는 쿠바를 방문해 옛 소련 시절에 빌려준 차관 320억 달러의 90%를 탕감해줬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푸틴의 통 큰 인심은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채워지는 든든한 재정에서 나온다. 푸틴은 올해 5월 중국에 매년 380억 m³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30년 장기계약을 맺었다. 무려 4000억 달러짜리 계약을 성사시켰으니 당분간 푸틴의 돈 풀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2기 연속 집권한 데 이어 2년 전 다시 대통령이 됐다. 형식적으로는 헌법의 연임제한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 개헌으로 임기가 6년으로 늘어 다시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장기집권에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제정 러시아 시절 황제가 부럽지 않은 ‘현대판 차르’다. 크림반도 합병도 국제적 반발을 부르기는 했지만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해 국내에선 지지도를 높인 수지맞는 장사였다.

▷햇볕이 강하면 그림자도 진하듯 잘나가던 푸틴이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으로 역풍을 만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제 만장일치 결의안에서 “충분하고 객관적인 국제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 관련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미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여객기를 공격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군의 개입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건 관련자’ 푸틴도 무사할 수 없다. 여객기 피격으로 국민을 잃은 국가가 12개국이나 된다. 승승장구하던 푸틴에게 위기가 닥쳤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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