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이나 먹고 그런 대답을 했다. 질문은 “공대를 졸업하고 왜 기자 시험을 보러 왔느냐”였다. 합격하고 싶어 허투루 꺼내든 빈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뒤 취재원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똑같이 답하지는 못했다.
11년 동안 달마다 한두 번 그런 물음에 대강 엮은 빈말로 답하며 조금씩 결론을 정리했다. 글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면접 때 대답이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상관없었다. 세상은 물론 변했지만, 그 변화는 누군가의 진심 또는 글과 무관했다.
지난달 종영한 TV 사극 ‘정도전’의 인기를 업고 유행어 하나가 돌았다. 드라마 대사가 아니라 인터넷 시청자 반응에서 떠돌며 번진 말이다.
‘인생은 하륜처럼.’
하륜은 조선 역사의 스타가 아니다. 역을 맡은 배우 이광기도 “어떤 사람인지 몰라 따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사료 속 하륜은 명과의 관계 개선을 주도한 것 외에 튀는 행적이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다.
흥미를 위해 가공된 드라마 캐릭터 하륜은 변절한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벼슬길에서 좌절을 안긴 정도전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는 야심만만한 이방원의 조력자를 자청한다. 드라마 속 하륜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강단 있는 성품의 왕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체적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속내를 보여주지 않으니 인상 깊게 남을 만한 행동도 당연히 없었다. 줄곧 읊은 대사는 “소생, 하륜이옵니다”. 대사도 아닌 ‘인생은 하륜처럼’이 어째서 유행어로 남았을까.
개성과 진심을 감추고, 모험적인 상황에서 앞장서지 않고, 실책은 숨기되 성과와 능력은 주문 외듯 홍보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숭상하고, 조용히 뒷전에 숨어 실세의 흐름을 살피고, 강한 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친구와 적을 똑같은 얼굴로 대하고, 어떤 경우에도 다걸기(올인)하지 않는,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임을 인생 전반을 통해 보여준 인물. 시청자가 헤아린 드라마 속 하륜의 덕목은 아마 그런 점이었을 거다.
5년 전 한 건축가와 인터뷰하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람이… 복심(腹心)이 있어야지.”
사무치게 고마운 말씀이었지만, 따를 수 있는 조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나마 말과 글을 삼키게 된 이유는 복심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다. 말과 글은 이미 지나치게 많다. 변화와 무관할 말과 글을 더해 얹을 까닭이 없을 따름이다.
요즘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순진하고 유치한 ‘중2병’ 감상주의를 풍자하는 코너가 있다. 11년 전 면접 때 대답, 그 소재로 쓸 만할 거다. 하지만 누구나 하륜으로 변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2병은 어쩌면 불치병이다. 털어낼 싹수가 없다면, 끌어안고 버틸 생존법을 찾아야 한다.
흘러온 것처럼 흘러가겠지만, “하륜처럼 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끝까지 꿈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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