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일본 축구 모두 ‘토털 사커’에 몰두한 적이 있다. 모든 선수가 포지션에 관계없이 벌 떼처럼 공격과 수비에 나섰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양국 축구는 경기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한국은 중앙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고 최후방이나 측면에서 단번에 연결된 볼을 공격수가 개인기로 ‘한 방’에 결정짓는 방식이었다. 황선홍 이동국 등 월등한 신체 조건을 갖춘 ‘원톱(one top)’ 스트라이커들이 각광받았던 이유다. 일본의 간판스타는 나카타 히데토시, 오노 신지 등 플레이메이커였다. 공격수는 이들이 연결한 패스를 마무리 짓는 조연에 불과했다.
양국 축구 스타일은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압축성장을 하면서 과정보다 결과를 우선했던 한국, 집단주의 문화 속에 매뉴얼에 따른 절차를 중시했던 일본의 분위기가 축구 스타일에 투영됐다는 것이다. 한일 사회의 이 같은 차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오래 지낸 한 일본인 기자는 “세월호 참사나 동일본 대지진 등 대형 재난에서도 두 사회의 대처 방식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사고가 터지면 책임질 대상부터 찾는다. 그리고 얼마 뒤 희생자를 처벌하고 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잊혀지고 만다.”
그렇다고 일본이 바람직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일본 의회의 후쿠시마원전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발생 뒤 1년 이상 지나 조사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다른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책임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집단주의”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일본의 사후 처리는 번번이 이런 식이었다. 이웃나라 국민에게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 뒤에도 일본 지도층은 ‘1억 총 참회론’으로 책임을 피해 나갔다. 1억 총 참회론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일본 국민 모두가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두 사회는 닮은 듯 다르기에 상대의 단점까지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의 단점이 장점으로 부각될 때도 많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디지털 선진국을 만들었고 대지진 때 피해 확산의 주범으로 꼽혔던 일본의 경직된 매뉴얼 문화는 요즘 한국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회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양국 행동방식의 딱 중간쯤에 위기관리부터 저출산 고령화까지 각종 사회문제 해결의 황금률이 존재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양국이 진지하게 서로를 마주보면 예상외로 건질 게 많다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최근 인터뷰한 내각관방(한국 총리실에 해당)의 오카니와 겐(岡庭健) 내각심의관은 한 가지라도 더 한국과 위기관리 경험을 공유하려 애썼다. “일본의 위기관리 체제는 실패에서 배운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훈련이다. 가만히 앉아서 긴급사태를 기다리는 건 위기관리 조직이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말 중에는 요즘 한국에서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았다.
외교 현안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일 관계를 ‘올 스톱’ 상태로 두기엔 양국 모두 기회비용 면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문제는 분리해 생각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정상 외교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각계의 중층 외교도 한 가지 대안이다. 서울을 방문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 도지사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만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평가할 만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대신 잇몸으로도 음식을 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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