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스탠퍼드대 메디컬센터에 잠시 단기 연수 중이다. 전공 분야인 소아 심장외과가 있는 소아청소년 병원(Children’s Hospital)을 둘러보았는데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필자가 일하는 병원과 비교해 4배나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 병원 빌딩의 2배가 넘는 튼튼한 최첨단 병원을 또 신축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공 목표가 2017년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했더니 첨단 건물이 되기 위한 준비를 위해 특수한 시공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했다. 규모와 질이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참에 이 대학 전체가 어떤 의학교육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 두루 둘러보았다. 한마디로 스탠퍼드대 의대의 목표는 미래 리더를 키우는 것이었다. 일단 스탠퍼드대 의대생이 되면 그것으로 세계적 리더가 보장되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떡잎’을 고르고 ‘싹’을 키우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다.
○ 파격적인 조기 교육 기회
우선 의사 지망생들을 위한 조기 교육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 학교는 의대에 지원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 고등학생들에게 기초 의학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수술 체험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름방학마다 열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 중 많은 수가 다른 대학 의대에 진학한 후 다시 스탠퍼드대에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7, 18세밖에 안 된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회가 있으면 주저 없이 덤벼드는 모습에서 자신에 삶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긍심을 읽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 컴퓨터 게임이나 채팅을 하는 아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부 아이는 ‘장차 심장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것처럼 전공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까지 갖고 있었다. 이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고등학생을 위한 심장해부학 수술 기초, 심장 생리 등을 배우고 있었는데 상당한 지식과 기술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향후 의대를 지원할 때 추천서를 쓰는 데에도 장점이라 했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스탠퍼드대 의대 프로그램은 동기 부여를 겸비한 선행학습은 아무리 빨라도 빠른 게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참고로 ‘될 성 부른’ 싹을 하루라도 빨리 영입하려는 대학의 노력에 딴죽을 걸거나, 규제를 하거나 하는 정책 역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의과대학의 의사 양성 프로그램
스탠퍼드대 의대 2학년 과정을 방금 마친 앨버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앳된 얼굴에 말이 빠르고 자신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장차 무조건 심장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무서운 소년(?)이기도 했다.
애리조나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했다는 그는 스탠퍼드대 의대 역시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었다. 듣자 하니 모교인 애리조나대에서 더 많은 장학금을 제안 받았지만 심장외과의가 되기 위해 스탠퍼드대 의대를 택했다고 한다.
이곳 의대는 80명이란 비교적 적은 수의 학생을 키우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백화점식 푸드 코트 같은 다양한 수업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자기 적성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선택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고 있었다. 고교에서 미리 학점을 이수한 과목에 대해서는 수강 면제 혜택까지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셀프 맞춤형 자가 성장의 기회를 환경과 시스템이 조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사행정 덕분에 앨버트는 일찌감치 자기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선택이 빨랐고 의지도 강해졌다. 또 그 의지를 곧장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그를 위해 마련된 상태였다. 의대 3학년 교육 속에 아예 연구년을 집어넣어 3학년 한 해는 본인이 관심 있는 연구실과 직접 접촉해 연구의 기본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 있는 학문과 자연스레 접촉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아마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연구역량을 조기에 키워 심장외과 의사가 된 후에도 진료와 연구 역량을 균형 있게 갖춘 명의(名醫)로 자랄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기초의학의 경우 의사 출신 연구원이 부족해 의학 연구자들이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스탠퍼드대 의대처럼 획기적인 조기교육을 통한 혁신이 가능한지 테스트해봐도 손해는 아닐 것 같았다. ○ 시뮬레이션센터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또 하나 부러웠던 것은 시뮬레이션센터(center for immersive and simulation-based learning·CISL)였다. 대만 부호 리커창의 기부에 의한 건물이라 아예 ‘리커창 교육센터’라 명명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야후의 제리 양과 부인 야마자키 이름이 적힌 간판이 붙어 있다. 야후 공동 창업자인 제리 양은 1994년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연구실 동료와 검색엔진을 개발해 야후를 설립했다. 제리 양이 모교인 스탠퍼드대에 기부한 7500만 달러(약 750억 원)는 기부금 액수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도 스탠퍼드대 동문이다. 참고로 리커창의 자제가 스탠퍼드대 동문이라고 했다.
제리 양의 기부를 보면 기부라는 것이 더이상 불쌍한 사람 돕는 차원이 아니었다.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 기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런 새로운 기부의 패러다임을 실천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음 직한데 아직 주머니만 열지 않았을 뿐이라고 애써 위로해 보았다.
기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고 정규 간호사 출신의 시뮬레이션센터장 수전과 만났다. 스탠퍼드대 캠퍼스에는 4개나 되는 의과대학 및 병원 교육센터가 있었는데 시뮬레이션센터는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하고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필요한 장비를 갖춘 곳이라고 했다. 교육 내용도 가짜 환자를 훈련시켜 진짜 환자처럼 역할을 하게 하거나 실제 환자가 나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본인 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등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우주공간을 체험하기 전에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비행 연습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센터의 실습 내용은 시험을 통해 통과(pass)와 실패(fail)가 결정되고 통과하지 못하면 재수강을 해야 할 정도로 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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