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진짜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신비주의’ 삶을 살아온 노(老)사업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곧이어 국가 최고의 수사·정보기관이 총동원돼 그의 뒤를 쫓는다. 수천 명의 인력과 갖가지 첨단 장비가 투입된다. 가족 지인을 상대로 정부기관의 은밀한 감시와 추격전이 펼쳐진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잠적했던 사업가는 야산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된다. 그러나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쯤 되면 얼추 시나리오의 얼개는 갖춘 것 같다. 여기에 최고는 아니지만 끈질긴 형사(또는 검사) 1명만 끼워 넣으면 어지간한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아 보인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에 대한 수사 과정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이처럼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3개월에 걸친 유 전 회장의 도주 행각은 그 자체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분위기가 느슨해질 듯하면 ‘조연’들이 차례로 잡히며 다시 긴장의 고삐를 조였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되자 도주 과정과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남은 건 의혹의 실체를 하나씩 찾아가는 영화 같은 전개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의혹은 넘쳐났지만 실체는 허탈했다. 이 중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압권이었다. 그는 베일 속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신의 주인은 유 전 회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영화 ‘식스센스’(주인공이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는…) 이후 가장 극적인 반전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제1야당 원내대변인이 제기한 ‘가짜 시신’ 의혹은 불과 하루도 안 돼 뒤집혔다. 중요한 근거로 꼽았던 시신의 키 차이가 현장 수습 때 잃어버린 목뼈 3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듯한 미스터리 영화가 졸지에 B급 코미디로 바뀐 셈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시신 바꿔치기설, 정부의 암살설, 유병언 생존설 등이 퍼지고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미스터리’라는 표현도 빠지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사건’(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 떠도는 의혹들은 대부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입증이 됐거나 어느 정도 설명이 된 내용들이다. 상당수는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가짜 미스터리’가 쏟아진 이유는 부실 공조 등 검경의 연이은 ‘헛발질’ 탓이 크다. 31일 경찰이 악의적 허위사실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냉소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미 검증된 내용조차 부정하는 의혹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수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수사 과정에서 국민들이 공감할 정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엉터리 의혹들마저 진짜 역사 속 미스터리가 될 것이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