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미덕인 세상이라지만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슬로 TV’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방송으로 2009년 베르겐∼오슬로행 기차 앞머리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7시간 내내 달리는 모습을 내보냈다. 내레이션도 영상편집도 없이 줄곧 풍경만 틀어주는 TV 모니터 앞에 전 국민의 20%가 빠져들었다. 이어 뜨개질(8시간), 장작 태우기(12시간), 연어의 산란여행(18시간)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유람선이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을 항해하는 장면을 6일 내내 생중계한 것은 압권이었다. 500만 인구 중 절반이 넘는 사람이 시청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역발상의 ‘슬로 TV’는 미국 등 외국으로 포맷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더 시끄럽고 더 화려한 것을 찾는 세상에서 ‘심심한 TV’가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해독제라도 된 것일까. 번잡한 일과에 휘둘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자극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순간임을 깨닫게 한다. 과도한 양념에 의지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낸 정갈한 음식에 끌리는 이유와도 비슷할 것이다.
여름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8월. 아침도 덥고 저녁도 덥다. 이래저래 피하기 힘든 불볕더위에 짜증난 사람들을 위해 청량한 시와 그림을 소개한다. 오규원 시인의 동시는 초저녁 달빛 아래 소박한 밥상 앞에 우리를 초대하고, ‘얼음작가’로 알려진 박성민의 그림은 시각적 신선함으로 무더위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굳이 멀리 여행하지 않아도 ‘달빛 밥상’을 음미하는 여유를 되찾는다면 그 어디든 근사한 안식처가 되리라.
무거운 슬픔이 치유되지 못한 채 휴가철이 돌아왔다. 한국인은 휴가를 또 다른 업무처럼 대하는 데 익숙하다. 평소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숨이 가쁘다. 단기간에 특별한 추억을 만들겠다는 과잉 의욕 탓이다. 올해는 ‘슬로 TV’의 주인공처럼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는 조용한 휴가도 좋을 듯싶다. 속도의 삶과 일상의 효율을 강요하는 세상을 거슬러 멈춤 게으름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는 거다. 그렇게 마음의 세간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도 넉넉하고 충만한 휴식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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