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새누리도 친노도 증오한 ‘새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5일 03시 00분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7·30 재·보궐선거에서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양면 공격을 받았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의 촉발점이 된 권은희를 새누리당이 공격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고 친노세력이 가세해 비판하고 나옴으로써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침몰했다. 권은희가 공천감이면 공천감이고 아니면 아니지 7·30 선거에는 차례가 아니고 다음 선거에는 차례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권은희로 인해 그 자리에서 친노인 천정배가 밀려났다는 게 반발의 원인일 것이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도 안철수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세력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난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후보를 양보했을 때 박근혜 지지자들의 어두운 얼굴에 돌아온 희색을 기억한다. 그때 그들은 정권을 이미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무서웠던 상대는 안철수였지 문재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언제든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새누리당은 대선 승리 이후에도 안철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새누리당이 원하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새정치를 배제하고 친노세력 주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은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에게 기대 살아가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새누리당의 일부 세력은 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타협의 정치라고 부르면서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그 관계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줬다. 1등이면 좋고 2등이어도 상관없는데 최소한 2등은 가능할 때 새누리당도 친노세력도 새정치를 원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두 헤게모니 진영의 협공 속에 안철수는 실패했다. 그게 안철수라서 실패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분명히 안철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신당 창당, 그리고 합당을 통한 야당 주도권 장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전해봤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이 공동의 적으로 삼은 것은 두 진영 사이에 어른거리는 무엇이지, 그 무엇인가가 안철수인지 다른 누구인지는 부차적일 뿐이다.

안철수가 새정치였는지는 논란이 많으므로 새정치에 괄호를 치자. 다만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비판에는 정치 신참에 대한 텃세라고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감정이 느껴진다. 안철수가 항의한 것이지만 안철수가 누구를 공천하면 자기 사람을 심는다고 비판하고 누구를 배제하면 자기 사람도 못 심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 비판은 하나의 관점을 취해야지, 관점을 정반대로 옮기면서 비판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증오의 표출일 뿐이다. 기초공천만 해도 과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폐지를 주장해놓고도 안철수가 주장하니까 현실 모르는 주장이라는 딴소리를 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 앞에 공약이고 뭐고 다 팽개친 적반하장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노동당을 개혁할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노동당에는 세 가지 유형의 세력이 있다. 첫째 절대 승리할 수 없는 낡은 세력, 둘째 인기 없는 보수정권에 대한 반발로 한 번은 승리할 수 있는 평범한 세력, 셋째 승리를 이어갈 수 있는 신진 세력이다.” 야당은 지금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보수정권이 인기가 없을 때나 승리를 기대하는 어부지리 세력의 정당이 돼 있다. 야당의 미래를 위해서도, 정치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새정치의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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