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명량’, 본질을 만나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을 보았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명량’의 감동은 여름 폭포처럼 시원했다. 그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절제의 미학, 절제의 힘이 아닐까 싶다. ‘명량’에서의 절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스토리의 절제다. 역사 드라마나 역사 영화에 흔히 나오는 음모와 배신, 사랑과 질투 같은 것이 없다. 이순신의 삶과 명량해전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그렇기에 이순신을 말하고 명량해전을 말하는데, 이순신과 명량해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의 수식과 치장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감독은 음모와 배신, 사랑과 질투 같은 군더더기를 버렸다. 명량해전 그 자체에만 육박해 들어갔다. 그건 감독의 용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 용기는 깊이 있는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군더더기를 발라내고 본질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던 용기와 철학.

두 번째는 대사의 절제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은 별 말이 없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병사와 백성들의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용기로 바꿀 것인가, 이순신은 말하는 시간을 아껴 그 시간에 고민을 했다. 소리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고민의 결과를 그저 묵묵히 보여줄 뿐이었다. 이 역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본질만 응시한 것이다.

글쓰기 방식을 크게 나누면 ‘보여주기(showing)’와 ‘말하기(telling)’가 있다고 한다. 꽃에 관한 시를 쓸 때, “꽃은 아름답다”고 쓰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꽃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꽃은 아름답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다. 이렇게 주장을 앞세우는 글쓰기는 ‘말하기’ 방식이다.

‘꽃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사람이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꽃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보여주기’ 방식이다.

‘말하기’는 주관적인 주장이고 ‘보여주기’는 객관적인 표현이다. 영화 ‘명량’ 속에서 이순신의 삶은 ‘말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였다.

7월 하순,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등은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초중고교생의 SW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5, 6학년을 대상으로 2017년부터 교과 내용을 개편하고, 중학교는 2018년부터 선택과목인 정보교과를 SW교과로 전환해 필수과목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SW교육을 입시와 연계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2학기부터 시범학교를 운영하겠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가뜩이나 교과목 부담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현장 교사와 전문가들의 생각인데, 대체 왜 과목을 늘린다는 것인가. 청소년들의 교과목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철학적인 문제인데, 청와대와 몇 부처가 이렇게 쉽게 교과목을 결정해도 되는 것인가. 교과목 추가는 교육과정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SW교육 의무화’ 운운은 너무나 가벼운 발언이다. SW교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주면(showing) 될 텐데 중요함을 느끼라고 주장하며(telling) 강요하는 형국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말만 남았다.

‘명량’은 불필요한 스토리, 불필요한 말을 모두 발라냈다. 주장하지 않고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본질을 응시할 수 있었고, 그게 바로 ‘명량’의 감동이었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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