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작은 영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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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많은지 서울이 텅 빈 느낌이다. 한가로운 서울을 즐기려고 모처럼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시원한 영화관 피서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서울을 떠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보려던 영화 ‘명량’의 표가 이미 매진이어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하필 그날 하루 관람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성웅 이순신의 이야기는 듣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자랑스러운 역사이긴 해도 ‘명량’의 관객 동원은 놀랍다. 그동안 이순신을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이 적지 않아서 한두 번 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련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간절히 영웅을 갈구하기 때문일까.

1597년에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적선과 맞서 싸우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와 지혜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현대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2014년에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진정한 리더, 헌신적인 책임자가 없었다. 오히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빠져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목도했고, 각 관련 부서에서는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가 극성을 부렸다. 더욱 답답한 것은 아직도 이 사건이 정확히 파헤쳐지고 이 일을 계기로 현명한 대책이 강구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량 해전은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미친 싸움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겁에 질려 도망치려고 할 때, 영웅은 외쳤다. “죽기로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그리고 이겼다. 그는 왜 미친 싸움인 줄 알면서 죽기로 싸운 것이고, 마침내 이기고야 말았던 것일까. 그의 가슴 속에 ‘백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줄 책임자가 없는 허전하고 답답한 이 시대에 400년 전 영웅이라도 만나고 싶은 보상심리일까? 그러나 이제는 영웅을 기다리는 대신에 “우리는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와 맞서 싸운 적이 있는가”라는 단테의 말을 자신에게 적용해봐야 할 때다. 여름휴가를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면 우리 모두 이제 작은 영웅이 되어 보자.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소소한 불의와 맞서 싸울 줄 아는, 타인의 억울함에 함께 분노할 줄 아는, 그런 작은 영웅 말이다. 그것이 위대한 영웅 이순신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윤세영 수필가
#영화관#휴가#이순신#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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