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신뢰 위기에 빠졌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은 군이 집단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옛말이 있듯이 어느 나라든 군 훈련이나 작전 중에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일로 군 곳곳에서 조폭만도 못한 잔혹한 사형(私刑)이 자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군 사법기구도 믿기 어렵다. 윤 일병 사건을 처음 폭로한 군인권센터는 어제 “아예 사고사로 처리하기로 처음부터 짜 맞춘 것 같이 수사했다”며 “윤 일병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지시하고, 사건을 축소 은폐한 헌병대장과 군 검찰관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어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윤 일병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특위’를 국회에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사건이 발생한 28사단을 비롯해 6군단과 3군사령부 육군본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 지휘선상의 모든 부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지만 벌써부터 ‘셀프 감사’를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고의로 은폐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는 선에서 면책이 된다 해도 국가안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은폐와 축소 악폐에 젖어 책임 회피에 급급한 군에 수사와 개혁을 맡기면 ‘제2, 제3의 윤 일병 비극’을 막을 수 없다. 계속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파헤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구성한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에서는 6일 첫 회의부터 위원회 활동의 한계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 역시 신뢰를 받고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국회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상같이 실상을 파헤치고 개혁안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
군 사법체계 개선이 특히 시급하다. 현재는 군 검찰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사단급 이상 부대 지휘관이 갖고 있어 병영 내 사건을 축소 은폐할 가능성이 크다. 법관이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관으로 참여하는 ‘심판관’ 제도와 부대 지휘관이 선고된 형량을 깎아줄 수 있는 ‘확인조치권(감경권)’도 손질이 필요하다. 군이 흔들리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진다.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대대적인 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