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우리는 왜 장수 지도자가 드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대한민국 리더십은 ‘대한민국 팀워크’가 키운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4일 본사 회의실에서 ‘우리는 왜 장수 지도자가 드문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4일 본사 회의실에서 ‘우리는 왜 장수 지도자가 드문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조직을 흥하게도, 문을 닫게 만드는 사람도 지도자들이다.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은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인정받는 지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 주소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4일 ‘우리는 왜 장수
지도자가 드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최근 세월호 참사나 병영에서의 잇단 구타 사망사건으로 ‘리더십 부재’에 대한 개탄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겐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을까, 또 사회 핵심 사안을 길게 보고 큰 그림을 짜는 ‘장수 지도자’는 왜 드물까라는 의문에서 이번 논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지도자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말씀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진강 위원장=7·30 재·보선이 끝난 뒤 여러 명의 정치 지도자가 퇴진하기도 하고, 새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민과 우리 사회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지 진지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고희경 위원=요즘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가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말씀하신 부분과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 던져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나타난 것으로 봐야겠지요.

김성태 위원=리더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능력과 자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으로 보입니다. 고위공직자 임명에 관한 평가 기준도 이제는 어느 정도 확립돼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정서나 문화가 너무 결과에 집착하는 편은 아닌가, 지도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데 조급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국민이 결과만을 중시한다 해도 언론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이 문제는 전문성이나 전문가의 영역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풍토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 부처의 간부 보직에 대한 인식만 봐도, 1년 반 정도 한자리에 있으면 오래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제 통상 협상을 할 때 참석자를 보면 상대방은 수석, 차석대표 등이 같은 업무를 4, 5년 한 사람들인 데 비해 우리는 1, 2년 정도 간격으로 계속 바뀌는 게 현실입니다. 상대방은 데이터가 쌓이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되니 논리대결에서 밀리기도 합니다. 언론이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을 지속적으로 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단명하는 것은 정부 부처, 공기업, 문화체육계 할 것 없이 뿌리 깊은 계파, 파벌 갈등에서 비롯된 측면도 큽니다. 많은 조직에서 비전과 대안,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키워내지 못하고 계파 안배나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자리를 차지한 지도자는 처음부터 리더십과 정통성을 의심받아 조직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면서 긴 안목의 정책을 소신껏 수립하고 추진해야 하는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계파 관리와 조직원 달래기에 급급하다 보니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위원장=요즘 리더십, 지도자 자질론 등에 관한 책이 엄청 많이 나옵니다. 지도자, 리더십에 관한 책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역으로 참된 지도자가 적다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지도자는 이끌어가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따르는 사람이 없으면 지도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도자를 논할 때, 자질과 성품에 대한 얘기가 필요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 즉 조직구성원들의 책무도 함께 논해야 할 것입니다.

김 위원=최근 국민 정서가 너무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좋은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에 걸림돌이 됩니다. 성숙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문화 중 하나가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일단 지도자를 뽑았으면 성적이 다소 안 좋아도 장기적으로 믿고 맡긴다는 원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 한 ‘장수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성적을 거둔 한국팀의 홍명보 감독은 결국 여론에 밀려 조기퇴출당했습니다. 반면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06년부터 8년간 팀을 조련해 결국 우승을 일궈냈지요. 지도자 역량을 평가할 때 본인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독일처럼 장기적인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주변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긴 안목을 갖고 지도자를 뽑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 위원장=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에서 패해서 감독직에서 물러난 것이 꼭 축구를 잘못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배출구를 찾고 있던 정치 경제적 불만의 유탄을 맞은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은 박수 쳐주고 허물은 덮어줄 수 있는 사회라면 이런 식의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박 스탠더드에디터=미디어의 역할이 여론을 형성하는 한편, 여론을 충실히 반영하기도 해야 하는데, 여론 조사를 하면 70% 이상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고 위원=제가 일하는 예술계에서 솔로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엔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팀을 이뤄서 ‘일개 구성원’으로 활동하면 별로 만족해하지 않지요. 한명 한명이 모두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이 큰 것이지요. 세계적인 솔로 성악가는 나오지만, 팀 구성원으로서 한 명의 스타가 만들어지기는 참 힘든 게 우리 현실입니다. 또 실패도 성공만큼 중요한 경험인데, 경험을 축적해서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위원=아무래도 지도자의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팀을 구성했으면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연 지연 계파에 연연해하지 않고 통솔력이나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이런 자질과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적 문화가 맞아떨어질 때 좋은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아까 나온 얘기를 다시 강조하자면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그 리더십을 극대화하는 사회적 환경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선진화하는 데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 위원장=장수 지도자 얘기에서 ‘장수’라는 표현이 시간적으로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의미만으로 쓴 것은 아닐 듯싶습니다. 시간적인 개념을 떠나서 장수 지도자의 진정한 의미는 훌륭한 지도자, 위대한 지도자로 봐야 할 겁니다. 우리 사회가 참 복잡하고 미묘하고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만, 다양성과 복잡성도 하나의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고 위원=그룹을 이끄는 게 지도자인데 그룹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불분명합니다. 지도자에게 바라는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위원=정말 좋은 리더는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 시스템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리더입니다. 반면에 시스템을 잘 갖춰 놓고도 결과적으로 성과를 못 만들어 내는 리더가 가장 안 좋은 사례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 리더와 리더십을 발굴해 지면에 연재하면 독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대한민국의 역사가 일천하기는 하지만 지도자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평가를 올바르게 못 받았던 아쉬운 점도 있을 겁니다. 화두를 던져 그런 부분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고 위원=최근 지도자가 되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처럼 화살을 온몸으로 맞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지도자라는 말 자체도 소중한 가치인데, 비난을 받아야 될 타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오늘 논의가 지면에 반영이 되고 우리 사회에 좋은 지도자가 탄생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박승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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