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의료 산학연계가 성공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스탠퍼드대 메디컬센터는 산학연계를 통한 산업화 과정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한마당으로 끌어모아 역할 분담과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부러운 것은 다른 분야의 일을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부 규제는 최소였다.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스탠퍼드대와 주변을 아우르는 복지는 최대로 갖춰져 있었다. 복지와 편익을 위한 재원은 사이좋게 민관이 합동으로 부담하고 있었다. 정부는 지역 경전철을 깔고 경전철 이용비는 산업계(구글 등)가 기부 형태로 지불하고 있었다. 인재들은 칼트레인(Caltrain)을 공짜로 이용하고 있었다. 대학과 산업계와 정부는 그야말로 윈윈윈(win-win-win) 삼위일체였다. 우리나라는?

산학연계 하면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의 연계를 많이 이야기한다. 팰러앨토(스탠퍼드대 위치)와 새너제이(실리콘밸리 위치)가 그 짝(연계) 중 하나다. 팰러앨토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는 쿠퍼티노는 ‘효자 도시’ 역할을 한다. 모두 차로 20분 거리로 연결되어 있다. 쿠퍼티노 중심에는 구글이 있고, 도시는 구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가로세로 2마일(약 3.2km)의 반듯하고 광활한 평지에 구글이 캠퍼스를 건설하고 있었다. 확장을 위해 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단다. 필자를 초청해 준 분이 쿠퍼티노에 사는데, 집값이 두 배로 껑충 뛰었다고 표정관리 중이었다.

스탠퍼드대의 원천 기술과 구글의 산업화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규모이고 효율적이었다. 스탠퍼드대는 대학대로 천문학적 액수의 국가연구기금(NIH)을 이미 따내고 있다. 구글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런 연구단과 산업화그룹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일례로 연구 윤리 등을 이유로 다른 주에서 불용하고 있는 일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는 발 빠르게 이를 허용하고 있었다.

필자가 연수 중인 흉부외과 수술장과 실험실에 구글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본다. 일반인에게도 흔히 알려져 있는 ‘구글 글라스’는 아직 의료계에서 널리 적용되지 않고 있다. 구글은 병원의 심장수술 분야에 이 기기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구글 글라스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다.

“착용이 간편하고,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수술 의사의 손뿐 아니라 오감을 초월한 다양한 센서(눈동자 움직임이나 눈 깜박임 등)를 이용해 쌍방향 또는 원격통신이 가능하다. 기억장치를 활용해 데이터의 저장과 수시 재활용이 가능하다.”

수술하는 외과의사는 이 안경만 쓰고 있으면 수술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술대를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감지하고 교신하며 교육할 수 있다. 그저 눈 몇 번 깜빡이고 음성명령어 몇 마디로 설명을 추가할 수도 있다. 녹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끝낼 수도 있다. 현장이 교육생뿐 아니라 전 세계에 원격으로 실시간 송출될 수도 있다. 시공을 초월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정보가 개인을 중심으로 그 시간에 필요한 것만 맞춤형으로 요리되어 전달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미래예측이 더이상 미래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병원현장-산업계-정부가 초기 단계부터 ‘한 팀’이 돼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협력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용을 절감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며 속도를 낼 수도 있었다. 구글은 자사의 미션과 비전에 의해 이런 일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기특한 점이 또 있었다. 창출된 부의 일부를 차세대 기술 혁신의 주역들이 일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복지와 편익에 투자되는 것이다. 칼트레인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우리나라 현실을 한번 돌이켜본다.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며 시동을 걸고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팀으로 달라붙어 구체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는 의아하다. 혹시 경쟁력 없는 연구 전문가(?)들이 결과물 없이 목소리만 높여 왔던 건 아닌지, 정부가 규제와 윤리 타령으로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닌지,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자사의 이윤만 추구하는 좁은 시야를 가진 건 아닌지…. 함께 반성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 콘텐츠 중심의 세상이 오고 있다. 세계 표준의 콘텐츠를 만드는 국가가 곧 세계를 선도할 것이다. 구글 글라스는 그런 점에서 글로벌 리더십의 인프라 역할을 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콘텐츠와 허브를 가지는 나라가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스탠퍼드대―구글 같은 강력한 연합체는 공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의료계도 잘 가다듬으면 세계 경쟁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을 새 아이템 몇 개 정도는 만들어 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외과수술 기술 자체, 재생의학, 바이오마커, 병원정보통신 분야 등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쟁해 볼 만한 아이템이다. 다만 현재는 필요한 분야와 인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같은 주제의 연구가 여러 곳에 중복돼 시너지가 생기지 않고 있다. 구심체가 없어 아쉽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우선 병원과 의대를 연구중심, 진료중심, 교육중심 등으로 삼분하는 시스템 도입을 자제해야 한다. 가능성 있는 국가프로젝트를 먼저 발굴 및 선정하고 해당 분야의 인재와 시스템이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보텀업(bottom-up)식 융합형 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

산업계도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병원-의대와 소통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다. 인재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 정부나 유관 부처도 남의 일처럼 떨어져서 규제를 강화하거나 군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희생적인 자세로 구심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 대상을 확대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글로벌 인재가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발굴된 인재가 전 세계를 샅샅이 벤치마킹하고 한국만이 잘할 수 있는 신분야를 창조하여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데 기여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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