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여성단체는 왜 산케이 보도에 침묵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조사기관인 한국갤럽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에 이어 40%였다. 불과 3개월 반 전에 60% 전후인 점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의 권위는 이제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되면 서서히 일기 시작하는 대통령 등 현 정권의 권력 중심에 대한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산케이신문의 기사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기정사실화하고 레임덕의 원인으로 사생활을 지목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8월 초 같은 조사에선 8주 만에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부정적 평가를 넘어서며 지지율이 반등했다.

재난 같은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원수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은 정색하고 비판할 주제라기보다는 국민감정과 관련된 미묘한 사안이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 및 비서실장 부부와 함께 연극을 관람했다가 야당인 한나라당의 질책을 받았다. 열린우리당은 2011년 구제역으로 축산 농가가 다 죽어 가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뮤지컬을 보며 웃고 박수쳤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문화행사를 즐길 때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시비는 대통령에 대한 저급한 정치공세다.

세월호 사건은 좀 다르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보고를 받았느냐 하는 것은 국민적 관심사가 된다. 필요하다면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특검에서 가릴 수도 있겠다. 다만 이것은 우리 국민의 관심사는 될지언정 이웃 나라가 걱정할 만한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 3·11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몰려왔을 때 일본 총리가 어디 있었느냐는 문제를 일본이 아닌 한국 언론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산케이 보도가 갖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행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있지 않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母體),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기사에는 대통령과 남자, 유부남 등 삼류 주간지가 한물간 여배우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듯한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기사에서 나는 국가원수에 대한 명예훼손 이전에 한 여자에 대한 모욕감을 느꼈다. 만일 박 대통령이 남자였어도 이런 식으로 썼을까. 여자라면 누구든 공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토 다쓰야 지국장을 고발해야 하는 것은 보수단체가 아니라 여성단체여야 할 것 같은데도 평소 목소리 높기로 유명한 여성단체들은 논평 한 줄 내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우리 여성단체가 여성 대통령이 당한 모욕에 대해서는 유독 야박한 것 같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국회에서 수차례 증언했다. 그런데도 산케이는 이 말은 무시하고 기사 작성의 근거로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찌라시’를 들었다. 유서 깊은 언론이 증권가 정보지에 근거해 기사를 쓴 것은 스스로를 찌라시 수준이라고 인정한 것 아닌가.

팩트 체크는 기자의 본분이며 더구나 상대는 일국의 대통령이다. 수습기자도 아니고 오랜 경륜을 가진 지국장이 이런 기사를 쓴 것은 산케이가 ‘한국 대통령 때리기’로 일본 내에서 혐한 감정을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토 지국장에 대한 검찰 조사에 반대한다. 평소 성향이 어떠하든 산케이 정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정통 언론이라면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과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자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오보(誤報)임을 산케이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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