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방동네 사람들’의 저자인 이철용은 1988년 4·26 총선에서 당선돼 4년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여소야대(與小野大)였던 13대 국회 초 실질적인 권력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국회였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은 활발해졌지만 정치권 부패의 폐해도 컸다.
이철용이 1994년 출간한 ‘국(國)’이라는 책에는 일부 정치인이 기업과 사학재단의 약점을 잡아 거액을 뜯어내고 방탕하게 생활하는 비리의 실상이 곳곳에 등장한다. 작가의 분신인 이동수는 “뒷골목에서 봤던 건달생활과 정치판 모습이 똑같았다. 하지만 건달들은 돈 먹은 것만큼 의리와 신의를 지켜주지만 국회의원들은 먹을 때뿐이고, 오히려 돈을 잘 주는 사람을 호구로 안다”고 꼬집었다. 13대 국회 때의 5공화국 청문회가 ‘돈벌이 청문회’로 전락했다는 폭로는 화려한 빛 뒤에 감춰진 그늘을 일깨워준다.
현행 19대 국회는 여소야대는 아니지만 13대 국회 이후 가장 막강하다. 다수결 제도를 무력화한 국회선진화법이란 이름의 악법으로 국회로의 힘 쏠림이 두드러졌다. 경제인들은 “청와대나 정부 부처도 파워 집단이긴 하지만 재계가 무서워하는 최고의 상전은 ‘여의도 권력’인 국회”라고 말한다.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기업에 굵직한 청탁을 하는 일이 급증했고 보좌관 출신의 몸값이 치솟았다.
한국에서 마피아라는 단어를 합성해 사용한 원조(元祖)는 옛 재무부의 영어 약칭 MOF와 마피아를 합친 모피아였다. 해양수산 분야의 해피아, 철도 납품과 관련된 철피아, 관료 조직 전반의 관피아라는 말도 등장했다. 재판 당사자 및 변호사와의 친소(親疎)나 운동권 시각으로 황당한 결정을 내리는 일부 판검사는 법피아로 불린다.
나는 누리는 권력에 비해 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나라의 앞날에 암적인 존재가 정치권의 ‘여의도 마피아’라고 본다. 모피아 관피아 법피아처럼 세 글자로 압축하면 여피아나 정피아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여의도 마피아의 아류로 봐도 무방하다.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떠오르면서 염불보다 잿밥에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이 속출했다. 철도와 해운 관련 수뢰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새누리당 조현룡 박상은 의원, 특정 직업학교를 봐주는 법 개정 대가로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는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은 여의도 마피아들이 연루된 부패 놀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흔히 그랬듯이 이들도 “수뢰 사실이 없다” “야당 탄압” “법안은 철학에 따라 했을 뿐” 운운하며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나 속속 드러나는 비리 혐의 정치인들의 행각을 접하면서 그들의 속 보이는 변명에 공감할 국민은 드물다.
오늘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 모인 여러분은 그냥 번질번질한 대리석 묘지와 같다. 겉은 하얗고 반짝반짝하지만 속은 썩고 있는 시체와 같다”고 이탈리아 정치인들을 질타했다고 한다. 신약성서의 ‘회칠한 무덤’이라는 비유와 같은 의미다. ‘회칠한 무덤’ ‘대리석 묘지’ 유형의 정치인이 한국에는 얼마나 될까. 우리 정치인 중에도 반듯한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는 법이다.
검찰과 법원도 일부 구성원의 일탈로 물의를 빚었지만 그래도 정치권의 부패와 거악(巨惡)에 맞서 썩은 사과를 도려낼 수 있는 조직은 그들이다. 정의감과 헌법정신으로 무장한 검사와 판사들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비리를 엄정하게 단죄하길 바란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 역사학자 존 액턴의 말은 진부한 감도 있지만 통찰력 있는 경구(警句)다. 전성시대를 맞은 여의도 권력의 빗나간 폭주를 견제할 곳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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