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는 끌려 다닐 것이다 다만 여기 이 점심이, 죽을 것 같은 날짜를 덮어 주리라고 어머니 곁에 앉은 김에 꾹꾹 먹는다
씹으면 아삭아삭 맵고 단 맛이 배어날 싱싱하고 실한 풋고추가 채반에 가득하다. 그 싱그러운 냄새와 빛깔의 꿈은 화자 무의식 속 갈망이 불러낸 것일 테다. 화자는 현재 행복하지 않다. 화자가 몸담고 있는 ‘이 골목 저 골목은/끌고 다니며 발길질만 했’단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죽을 것 같은 날짜’를 앞뒀단다. 칙칙하고 울적하던 차에 한 꿈이 햇살처럼 비춘다. 화자의 꿈에서 풋고추들은 깔끔하게 반으로 쪼개져 있다. ‘쪼개진 풋고추를 처음 보여준 사람은’ 어머니였지. ‘고추전 잘 부치시는 우리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쪼개진 풋고추뿐일까. ‘내가 아는 모든 것, 어머니가/처음으로 비춰준 것들이었다’. ‘까꿍!’부터 도리도리 짝짜꿍은 어머니가 맨 처음 가르쳐주시는 삶의 기호들. 자식에게 살아가는 법, 살아가는 맛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살림이다. 반면 세상의 ‘스승’들은 진을 뺄 뿐이다. 두 눈 가리고 끌고 다니다가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내팽개친다. 나보다 배움이 짧다고 생각해 온 어머니, 그런데 ‘맛있었던 지식들’은 ‘모조리 어머니가 먹여주신 것들’이구나. 화자는 한달음에 어머니를 찾아가 ‘나물 그득한 점심’을 달게 먹는다. ‘함께 기우는 목숨 언저리 햇살’이라니 화자는 젊지 않은 나이이고 어머니는 많이 연로하셨을 테다. 어머니 손맛이 그리울 테지만 밥상 차리시게 하지 않고 어디 맛있는 밥집에 갔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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