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천주교 시복식을 KBS TV로 지켜봤다. 처음에 다소 흥미가 가던 시복행사가 미사로 연결되면서 지루해졌다. 채널을 돌렸다. SBS와 MBC는 이미 중계를 중단했다. KBS만 그 후로도 1시간 더 넘게 미사를 중계했다.
시복식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그러나 끝까지 중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민영방송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끝까지 중계했다면 시비 걸 이유가 없다. 하지만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국민 중에는 천주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도 있고 불교도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다. 더 절제 있게 중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영방송이다. KBS를 보던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적자에 시달리는 KBS가 시청률을 무시하면서까지 시복식을 끝까지 중계할 이유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종교에 대한 편파적 배려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종교적 공정성에 대한 KBS의 둔감함은 정부와 서울시가 시복식 장소로 광화문을 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광화문을 내준 것은 천주교가 원했고 또 광화문을 배경으로 교황이 진행하는 시복식이 세계적으로 보도될 경우 한국을 선전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천주교 행사에 광화문 거리를 내줬으니 불교가 달라이 라마 강연을, 개신교가 빌리 그레이엄 초청 집회를 광화문에서 열겠다고 하면 또 광화문을 내줘야 하는 것인가.
시복식 경비를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이 지출됐다. 그 비용을 천주교 측이 사후 정산해 줄 리 없다. 물론 어느 행사든 큰 행사면 경찰이 동원된다. 경찰의 임무 중에는 그런 일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시복식을 광화문이 아니라 대형 운동장에서 했다면 경비비용은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 행사는 대형 운동장에서 여는 것이 보통이다. 국민의 세금은 천주교인들만 내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인도 내고 불교도도 내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낸다. 개신교인과 불교도는 왜 자신들이 낸 세금이 천주교 행사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 온 사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정상화해야 할 것은 대통령 그 자신의 종교와의 관계다. 박 대통령은 올해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석탄일 법요식에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전례를 만든 것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물론 박 대통령은 명동성당 미사와 명성교회 예배에도 한 번씩 참석해 균형을 맞춘 듯한 인상을 주려 했다. 세 모임 모두 명목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였다. 그러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이 유독 특별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은 개신교의 연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왔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서약을 하는 나라도 아닌데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오랜 관행이어서 묵인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종교, 특히 불교가 가만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 관행부터 끊어야 다른 것을 끊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대해준 불교계에 대한 보답의 성격이 짙다. 교황 방한 행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은 방한준비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 등 천주교 내 반박(反朴)세력의 환심을 사보려는 의도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남들에게 주문만 하지 말고 본인부터 비정상을 정상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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