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가롭게 빨래를 너는 시간, 저 안에서는 한 돌이 안 된 아기가 “엄마, 엄마,” 옹알대면서 보행기를 타고 거실을 누빈다. 결혼을 꿈꾸는 젊은 여인들이 바라마지 않을 정경인데, 정작 당사자인 화자의 마음은 겉돌고 있다. 제 아기를 ‘저 아이’란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줄리언 무어가 제 아이를 한없이 낯선 눈길로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화자는 아기를 사랑할 테다. 어쩐지 육아도 살림도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능숙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 같지도 않고, 아기도 본인도 건강한 것 같다. 그런데도 화자는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비명을 지른다. 이 미칠 것 같은 권태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 안락한 가정을 이루는 것만으로 한생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수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제 삶의 시간이 장삼이사의 고만고만한 ‘제목도 없는 시간’인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지는데 어찌 호락호락 행복할까. 자기애 강한 엄마시여,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지요. 곧 당신만의 ‘무엇을 할’ 시간이 주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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