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보좌진과 친해진다는 건 그 의원을 싫어하게 된다는 의미다. 십중팔구 그렇다. 특히 외부에 개혁적으로 비치는 의원일수록 ‘진상’이 적잖다. 다음은 여러 보좌진의 솔직한 영감(보좌진은 의원을 영감이라고 부른다) 뒷담화를 대화체로 엮었다.
A=(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처럼) 출판기념회 열어 뒷돈 챙기는 건 정말 양심적인 거야. 우리 영감은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만들면 해당 기관에 먼저 보내라고 해. 보도자료를 막으려면 알아서 하라는 거지. 그렇게 해당 기관에 민원 넣고, 후원금 당기고…. (이 의원은 최근 고위 당직 후보로 거론됐다.)
B=그건 깔끔한 거야. 우리 영감은 대기업 오너를 국감 증인으로 신청하더라고. 당연히 놀란 대기업에서 뛰어왔지. 그러자 능청스럽게 “나는 모르는 일이니 보좌관과 상의하라”며 슬쩍 빠지더라고. 뒷거래까지 보좌관을 시켜서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겠다는 거지. (이 의원은 나름 지역의 차세대 주자다.)
기자=그래도 ‘박상은 사건’ 이후 보좌진 월급 빼먹기는 좀 사라진 거 아니야?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은 보좌진의 제보로 시작됐다. 한 전직 보좌관은 급여의 절반을 박 의원이 후원금 조로 가져갔다며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C=월급 일부를 후원금으로 떼 가는 건 미풍양속이지. 지역구 아주머니를 보좌진으로 등록해놓고 월급을 통째로 뽑아먹는 의원도 있어. 바로 우리 영감! (이 의원은 나름 쇄신파로 분류된다.)
D=국회 들어와 아직까지 영감에게 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쌍욕하고 물건 집어던지는 의원도 여럿 있잖아. ‘참으면 윤 일병(폭행 사망 사건의 피해자) 되고, 안 참으면 임 병장(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된다’는 말이 딱 맞아.
여의도에 불어 닥친 ‘사정 태풍’의 중심에 전직 보좌진들이 있다. 의원의 비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들이 ‘저승사자’로 돌변한 것이다. 누군가 ‘정치인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더니 딱 들어맞는다. 검찰의 타깃이 된 의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챙기지 못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동료 의원들이다. 검찰이 함부로 구속하지 못하게 기꺼이 ‘방탄국회’를 열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나선 건 숭고한 동지애 때문이 아니다. 모두들 내 문제라는 절박함이 있어서다. 출판기념회를 열어 뒷돈 안 챙겨본 의원이 어디 있나. 법안 처리나 국감 질의 때 사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의원은 또 어디 있나.
이제 의원들은 바빠질 게다. 내가 지난여름 무슨 일을 했는지 촘촘히 짚어봐야 할 시간이다. 더없이 싹싹한 보좌진들이 혹여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국가를 바꾸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조사에 나서는 게다. 그런데 우리는 의원들의 ‘진상 짓’과 먼저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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