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100살이다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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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우리의 표어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는 가훈, 급훈, 교훈 등을 통해 ‘쓸모 있는 사람’을 강조했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공부했고, 심지어는 결혼을 결정할 때에도 ‘과연 나는 상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인가?’를 자문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 사람이 불쑥 말했다.

“쓸모에 상관없이 그냥 사랑받으면 안 되는 건가요?”

그 이후 우연히 친한 친구에게서 이런 푸념을 듣게 되었다.

“우리 엄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그 놈의 쓸모 타령 때문에!”

엄마가 연세가 많이 들면서 딸에게 보탬이 되기는커녕 딸을 도와준다고 하는 일이 그릇을 깨거나 냄비를 태우거나 간을 잘못해 음식을 망치거나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가 이젠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구나”라고 한탄하며 몹시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이다.

엄마의 되풀이되는 한탄에 속이 상한 친구는 “엄마,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쓸모가 있건 없건 엄만 엄마잖아. 쓸데없이 쓸모 얘기 좀 하지 마”라고 말했다기에 내가 괜히 변명했다.

“얘, 그건 자존심 문제야. 쓸모없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거든. 그런데 어쩐다니. 우리도 이젠 자꾸 쓸모가 없어지니….”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쓸모’가 지나치게 경제적 효용성과 맞물리면서, 용도를 다한 물건을 버리듯이 사람 역시 돈을 벌지 못하거나 건강하게 활동하지 못하면 버림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가 된 데에는 노인 자살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100살이다 왜!’라는 책이 있다. 샐러리맨으로 퇴직 후 100세가 넘도록 여전히 전철로 출퇴근하며 일을 하고 있는 일본인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나는 책 제목에서 ‘왜!’가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인 게 마음에 들었다. 물음표는 상대의 의중을 살피는 것이지만 느낌표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처럼 우리도 모든 일에 느낌표를 붙여서 한번 이야기해보자. “가난하다 왜! 못생겼다 왜! 쓸모없다 왜! 나이 많다 왜!” 이렇게 자기 긍정으로 시작하면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돈도 없고 인물도 별로고 사회에서 별 쓸모도 없다. 그렇다, 왜!”라고 외쳐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윤세영 수필가
#쓸모 있는 사람#공부#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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