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여야와 세월호 유가족이 참가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하자고 새누리당에 제안했다. 박 원내대표는 어제 “여야 합의에 세월호 유족이 계속 반대하는 것은 정부 여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혼선과 불신을 걷어내야 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달 19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성사시킨 재합의를 박 원내대표 스스로 무산시키고 세 번째 협상을 갖자고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다.
박 원내대표의 딱한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는 새누리당을 상대로 최초 합의를 했다가 당내 반발에 밀려 이를 뒤집고 어렵게 두 번째 협상에 나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두 번째 합의 역시 세월호 유가족과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제1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겸한 그로서는 여당과 국민들 앞에서 면구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자기 손으로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무효로 돌리고 새로 계약을 하자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 대표의 태도가 아니다. 박 원내대표는 직을 걸고서라도 약속을 지키며 당내 반대 세력을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3자 협의체 구성 제안은 대의민주주의와 국회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는 전례를 남긴다면 앞으로 이 나라의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국회 입법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나서도 정치권은 막을 명분이 없다. 새정치연합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가. 세월호 참사가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국회의 존립 이유를 무력화하는 예외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 여야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설득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의견을 입법에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안 된다.
지금 국회에는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데 필요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특별법과의 연계를 고집하는 바람에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유족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세월호 특별법과 이들 법안을 분리해서 처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세월호 특별법의 볼모가 돼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