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꿀잠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4당5락. ‘대입 수험생이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은 꽤나 억압적이었다. 빽빽한 교실에서 60여 명이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했다. 모두가 몽롱한 정신으로 아침 7시에 등교해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려면 사유서를 내야 했다. 늦은 밤 집에 와서도 운동이나 취미생활은 언감생심. 집중될 턱이 없지만 또다시 책상머리에 앉았다. 물론 4시간만 자는 학생은 극소수였지만, 일찍 잠드는 것은 분명 그만큼의 불안감을 가져왔다.

이런 학창 시절을 보낸 30, 40대가 어른이 된 지금, 그들의 삶은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야근에 시달리거나 회식을 하거나. 일을 빨리 마쳐도 남들보다 빨리 집에 간다고 하면 눈치가 보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래 일할수록 부지런하고, 근무 태도가 좋고, 일을 잘한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직장에서 지배적이다.

공부든 일이든 늦게까지 하다 보니 한국은 세계 최고의 ‘수면 부족 국가’가 됐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8개국 중 최하위다. 이는 조사 대상국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8시간 22분)보다 33분 짧다.

한국에 온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놀란다. 네덜란드 금융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는, 자기는 평일 오후 6시에 퇴근해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 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제2의 하루’를 시작하고 밤 10∼11시에 잠이 든다고 했다. “잠을 적게 잔다고 일이나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느냐”고 묻는 그에게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웠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은 최근 공동으로 ‘심리과학 저널’에 수면 결핍이 기억을 왜곡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에게 영상 50개를 보여준 뒤 그 내용에 대한 질문에 답하게 했다. 수면시간이 5시간 미만인 참가자들은 5시간 이상 잠을 잔 사람들보다 존재하지 않는 영상을 ‘분명히 봤다’고 주장하는 등 허위로 기억하는 경향이 강했다. 수면 결핍은 이렇게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는 판단력 저하를 불러온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수면 결핍은 피로감과 무기력을 가져오고 때로는 비만이나 혈당 조절 문제도 유발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면장애 환자는 무려 63만5000명에 이른다.

최근 경기도교육청과 충북도교육청 등이 ‘9시 등교’를 추진한다는 발표를 두고 말들이 많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일부 맞벌이 부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걱정 섞인 푸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늦게까지 잠 못 드는 ‘올빼미 생활’이 학생과 직장인을 포함한 한국인의 심신(心身) 행복감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부작용을 바로잡을 방안은 마련하되 이번 논의가 한국인들이 어떻게 ‘꿀잠’을 잘 수 있는지 고민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비효율적인 부지런함의 덫’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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