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족 20여 명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계속된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에는 진보 성향의 단체 학계 종교계 인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가세했다. 야권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가 유족들에 의해 거부된 뒤 “박 대통령이 나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4일 “(박 대통령은) 유가족과 야당, 시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받으시라. 이것은 대통령밖에 결정을 못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필요하면 세월호 유족이든 누구든 만나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유족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소통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 있다. 유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고, 특검 추천권도 사실상 유가족과 야당에 넘기라고 요구할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과 현행법을 무시하고 유가족과 야당 강경파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여당에 지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걸핏하면 대통령이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한다고 비판하던 야당 사람들이 대통령더러 특별법을 해결하라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자,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정신과 국회의 입법권을 포기한 책임 떠넘기기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여당이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제안을 거절한다면 강도 높은 대여 투쟁으로 전환하겠다”고 압박했다. 당내 강경파를 의식한 발언일지 모르지만 두 번이나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합의를 했던 제1야당 교섭단체 대표로서 무책임한 자세다. 민간단체를 입법 주체로 참여시켜 재재협상을 한다는 것은 대의(代議)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합의사항을 당내에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깨끗하게 사퇴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의 처신이다.
세월호 유족도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에서 일반인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의 슬픔이 정치공세로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정치권은 유가족을 정쟁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대책위는 또 여야 간에 합의된 특별법안을 이달 안으로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단원고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대책위원회가 여야 재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책임 있는 제1야당이라면 일반인 유가족들의 이 같은 인식이 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생각임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