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어제 대우특별포럼에서 대우그룹 해체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묶은 책 ‘김우중과의 대화’에서도 “김대중(DJ) 정부 경제 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며 15년 전 대우그룹 해체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 교수도 어제 출판기념회에서 그룹 해체를 주도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강봉균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에 바람직했다고 생각하느냐”고 공개 질의해 ‘대우 해체 진실 게임’에 불을 붙였다.
김 전 회장을 비롯한 대우 임직원들은 196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공산권과 아프리카까지 누비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공로가 크다. 그러나 차입경영에 의존한 몸 불리기 전략은 1997년 외환위기 후 자금 사정 악화로 이어졌고 1999년 그룹 해체라는 비운을 불렀다.
15년 전 DJ 정부의 대우 해체가 불가피한 결정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김우중 씨 측은 기업의 부채비율을 갑자기 200%까지 낮추라고 요구한 무리한 기업구조 개혁의 문제점, 국내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헐값에 넘긴 국부(國富) 유출 폐해를 거론한다. 반면 이헌재 강봉균 씨 등은 “대우의 자금 사정이 크게 나빠져 해외 투자가들이 모두 외면하는 상태까지 갔는데도 김우중 씨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대우 해체는 자업자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이 한국 경제에 남긴 빛과 그림자가 적지 않지만 이제 와서 희생양으로 자처하는 것은 뒷맛이 씁쓸하다. 그는 대우 해체 후 분식회계, 사기대출, 횡령 등의 혐의로 2006년 법원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9253억 원이 확정됐다. 대우그룹이 무너진 뒤 30조 원의 국민 세금이 대우 계열사에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투입됐다. 김 전 회장은 부인과 자녀 명의로 국내외에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납부한 추징금은 법원이 부과한 추징금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김 전 회장이 미납 추징금 납부에 적극적인 태도로 나왔더라면 그가 오랜만에 털어놓은 ‘비화(秘話)’가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