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평락]발전소, 한강의 문화를 꽃피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7일 03시 00분


최평락 한국중부발전㈜ 사장
최평락 한국중부발전㈜ 사장
기술은 차갑고 문화는 따스하다. 냉정과 열정, 감정의 유무(有無), 둘 사이에는 평행선처럼 합치점이 없다. 이것이 오랜 기간 우리를 지배해 온 기술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시대는 우리에게 이런 전통적 관념을 하루빨리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인지 알 수 없는 무경계의 공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문화가 기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기술은 문화의 외연을 확장시켜 주는 유쾌한 공존과 융합,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의 전형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철강공장, 가스저장시설, 도축장 등 산업시설에 대한 획기적 변혁을 통해 도시 미관을 새롭게 하고, 혁신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다. 그중에서도 기술력의 거대 집합체로 불리며 기술의 정통성을 고집해오던 발전산업의 변화는 또 다른 놀라움의 대상이다.

영국 런던의 템스 강가에는 높다란 굴뚝이 달린 거대한 적벽돌 건물이 있는데, 누가 봐도 영락없이 화력발전소인 이 건물에 내걸린 간판은 ‘테이트모던 미술관’이다. 폐쇄된 발전소의 삭막한 공간을 문화의 감성으로 감싸 안아 기존의 여느 미술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냉정과 열정의 조화로움을 탄생시켜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도록 만든 영국인들의 창의적 발상에 저절로 경탄이 나온다.

1930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이자 2016년 폐쇄할 예정인 서울화력발전소(옛 당인리발전소)에서도 테이트모던의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으로 80여 년간 전력산업을 앞장서 이끌어 온 서울화력발전소는 보일러, 터빈 등 발전설비로 꽉 차 있던 공간에 문화예술, 역사, 과학을 담아내는 ‘문화창작 발전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지하에는 세계 최초의 도심지 대규모 발전소가 자리 잡고, 지상에는 도시재생형 공원이 조성되며, 젊음과 자유의 상징인 홍대문화권과 수려한 한강 수변을 연계함으로써 에너지와 문화, 창작, 소통의 발원지로 거듭날 것이다. ‘한국의 테이트모던’ ‘서울의 랜드마크’가 새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라는 고매한 옷을 입은 발전산업은 국민에게 다양한 행복을 공급하는 행복발전소로 진화하면서 가치 면에서나 성장가능성 측면에서 상상 이상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국내 발전산업의 변화가 서울화력발전소의 변모를 계기로 속도를 내기를 기대해 본다.

최평락 한국중부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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