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이승복 아버지’의 쓸쓸한 장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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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30일부터 나흘간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해안으로 침투했다. 이들은 울진 산간마을 주민들에게 북한 찬양을 강요한 뒤 반항하거나 주저하는 주민은 대검으로 찌르고 돌로 머리를 쳐서 죽였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우리 군경(軍警)은 그해 말까지 소탕작전을 벌여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했다.

▷북으로 도주하던 공비들은 12월 9일 강원 평창의 외딴 집에서 당시 9세의 초등학생 이승복 군과 두 동생, 어머니 등 4명을 살해했다.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 하자 공비들은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대검으로 찢어 죽였다. 아버지 이석우 씨도 공비들에게 붙잡혀 허벅지를 찔렸지만 간신히 도망쳐 군경에 신고했다.

▷가정이 쑥대밭이 된 충격으로 힘들게 살았던 이석우 씨가 24일 세상을 떠났다. 사건 당시 겨우 목숨을 건진 이승복의 형 이학관 씨 등 유족들은 25일 “기관장들께 연락드리겠다”는 이승복기념관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강원교육청이 관장하는 기념관에서 26일 열린 장례식에는 도지사도, 교육감도, 지역 경찰 간부도 참석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놓인 작은 조화(弔花)는 교육감이 아닌 부교육감 명의였다. 유족들은 기념관 앞마당 콘크리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식사를 했다.

▷일부 좌파 세력은 1990년대 이후 이승복 가족 피살 사건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승복은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기념관장의 직급도 교육장급에서 계장급으로 낮아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승복 아버지’ 장례식에 불참한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반공(反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고, 최문순 강원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이승복 유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최근 서울 현충원에서 열린 어느 전직 대통령의 5주기 추도식 때 46년 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을 일으킨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의 조화가 레드카펫 위에 올려져 극진히 예우 받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하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북한 무장공비#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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