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옆에 있던 친구가 “여기 일본 아니잖아. 전화 받아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래도 조심스러워 작은 소리로 통화하는 나를 보고 “역시 일본인답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일본에서는 지하철은 물론이고 버스 기차 등을 타고 가면서 통화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차 안에선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므로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설정하고 통화는 삼가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가끔씩 흘러나온다. 업무상 전화가 걸려온 샐러리맨들도 주위의 눈을 의식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일을 처리한다. 대부분은 전화가 걸려 와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차례 전화벨이 울리면 “나 지하철 안이니까 나중에 전화해”라고 속삭인다.
한국인 친구가 일본에 가서 10년 만에 어렵사리 지인을 찾아 전화를 했는데, 상대방이 지하철 안이라면서 전화를 뚝 끊었다고 한다. 친구는 “만약 나한테 교통사고 같은 긴급한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할 뻔했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도 예민한 반응이라 할 수 있지만, 일본인 친구도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관대하다고 할까 무심하다고 할까. 누구나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통화를 한다. 차를 타서 내릴 때까지 계속 전화를 하는 사람도 보았다. 가끔은 주변 사람들이 상대방과 어떤 통화를 하는지 다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부끄럽거나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규율을 만들어 매뉴얼화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사회에서 ‘제외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것이 설사 ‘민의(民意)’로 결정된 것이 아니어도 그렇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을 조례로 정한다. 흡연 장소가 결정되면 감시하는 사람들이 순찰을 하게 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쓰레기도 아주 세세하게 분류해서 버려야 한다. 페트병은 뚜껑과 병을 따로 나누어서 분리배출해야 하고, 음료수병 겉에 싸인 포장 종이도 벗기지 않으면 안 된다. 분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쓰레기는 가져가지 않는다. 규율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겐 쓰레기 분리배출이 정말 큰일이다. 테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역 구내나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곳도 있다. 집까지 쓰레기를 갖고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고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과한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에서 살 때는 이런 규율들에 별 의문을 갖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내다 일본에 가면 새삼스레 이 모든 규율이 거북하게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규율이나 규정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 같다. ‘선후배 사이니까’ ‘잘 아는 사람이니까’라는 이유로 융통성이 발휘된다. 매뉴얼에는 안 된다고 분명히 되어 있지만,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에서 부탁하거나 간청하면 안 되는 일이 성사되기도 한다. 나도 이런 종류의 덕을 본 적이 있을 정도니까.
이런 ‘느슨함’은 일본의 빡빡한 점에 비하면 좋은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통용되는 일이 계속되면 누구나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러다 보면 규율 자체가 무력해지고 질서가 지켜지지 않게 된다. 심지어는 최악의 경우 큰 사건이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의무화되어 있는 훈련이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진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신용카드로 지불할 때 사람들이 서명하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국인 친구가 서명을 하는데 “이렇게 대충대충 그려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로 대충 서명을 했다. 슈퍼에서 어떤 사람이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대충 줄을 휙 긋는 것도 보았다. 더 놀란 것은, 가게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건네자 가게 점원이 대신 대충 사인해 버리는 것을 봤을 때였다. ‘엉?’ 하고 눈이 커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내 이름은 한자로 쓰면 획수가 많아 쓰기가 귀찮을 때도 자주 있다. 사실, 예전에 나도 대충 서명을 해도 물건을 사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신용카드 뒷면에 있는 실제 서명과 비교해 본다든지 하는 점원도 없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값비싼 물건을 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국은 좀 느슨하네”라며 편리함에 감탄했다. 어쩌면 나 역시 이 느슨함에 익숙해질지 모른다.
일본 백화점에는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 점원은 계산서의 종이에 적힌 사인과 카드 뒷면의 사인을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내가 진짜 카드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의심하나’라고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규율이 일본처럼 남용되는 것도, 한국처럼 무력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규율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씩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3년째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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